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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기업가치 117억달러(약 16조6000억원)를 인정받았던 미국 소프트웨어 스타트업 에어테이블이 최고점 대비 80% 이상 낮은 기업가치에 새 주인을 찾았다. 특히 실적이 꾸준히 개선되는 가운데 인정된 몸값이라는 점에서 큰 충격을 준다. 업계에선 생성형 AI(인공지능) 확산 이후 기존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기업을 바라보는 시장의 평가 기준이 근본적으로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명확한 사례라는 분석이 나온다.
7일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테크크런치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이탈리아 테크기업 벤딩스푼스는 최근 에어테이블을 사업가치(Enterprise Value) 기준 12억8500만달러(약 1조8400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회사가 보유한 순현금 등을 포함한 총 지분가치는 약 22억5000만달러(약 3조2200억원)로 평가됐다. 거래는 규제당국 승인 등을 거쳐 연말 마무리될 예정이다.
2013년 설립된 에어테이블은 스프레드시트와 데이터베이스를 결합한 업무 협업 플랫폼을 제공하는 미국 SaaS 기업이다. 엑셀처럼 익숙한 인터페이스를 기반으로 별도의 코딩 없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프로젝트 관리, 영업관리(CRM), 마케팅 등 다양한 업무용 애플리케이션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번 거래가 주목받는 이유는 에어테이블의 매출이 개선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가치가 크게 절감됐기 때문이다. 에어테이블의 연간 반복매출(ARR)은 지난 6월 기준 약 4억8000만달러(약 6860억원)로 1년 전보다 20% 이상 증가했다. 회사에 따르면 50만개가 넘는 조직이 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으며, 미 경제전문지 포춘이 선정한 미국 100대 기업 중 80%도 회사의 고객이다. AI 대응도 늦지 않았다. 올해 초에는 여러 AI 에이전트를 조율해 업무를 수행하는 플랫폼 '슈퍼에이전트'를 공개했다.
그러나 시장은 이전과 같은 프리미엄을 인정하지 않았다. 2021년 제로금리와 SaaS 투자 열풍 속에서 에어테이블은 시리즈F 투자 당시 기업가치 117억달러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올해 장외시장에서는 약 40억달러(약 5조6700억원) 수준으로 평가받았고, 이번 매각 과정에서 인정받은 몸값은 그보다도 크게 낮았다.
업계는 이번 거래를 SaaS 업계의 구조적 변화로 해석하고 있다. AI 회사에 주로 투자하는 미국 벤처캐피탈(VC) 티오리 벤처스(Theory Ventures)의 제너럴파트너 토마시 퉁구즈(Tomasz Tunguz)는 "기존 SaaS 기업에 대한 시장의 기업가치 평가 기준이 얼마나 크게 재조정됐는지를 보여주는 명확한 사례"라며 "2021년 최고점에 투자받은 SaaS 유니콘들에게 할인된 가격의 전략적 M&A가 현실적인 엑시트(회수) 시나리오가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에어테이블의 초기 투자자인 프리스타일캐피탈의 공동창업자 데이브 사무엘(Dave Samuel)은 "이번 거래는 B2B SaaS 스타트업과 투자자들에게는 매우 뼈아픈 사건"이라며 "우리 포트폴리오 (사스) 기업들에도 전략적 매각 가능성을 검토하라고 권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한편 에어테이블을 인수한 벤딩스푼스는 최근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공격적으로 소프트웨어 기업을 사들이는 회사 중 하나다. 2013년 설립된 벤딩스푼스는 모바일 앱 개발사로 출발했지만 최근에는 수익성이 악화된 디지털 기업을 인수한 뒤 사업 구조를 개선하고 수익성을 높이는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올해 인터넷 브랜드 AOL과 행사 플랫폼 이벤트브라이트를 인수했으며 파일 공유 서비스 위트랜스퍼, 동영상 플랫폼 비메오 등도 보유하고 있다. 지금까지 M&A 기업만 50곳이 넘는다. 지난 7월 나스닥 상장 이후에는 에어테이블을 첫 번째 인수 대상으로 선택했다.
실리콘밸리 대표 액셀러레이터(AC·창업기획자) 와이콤비네이터(YC)가 투자한 스타트업에 일반 개인투자자도 간접적으로 '베팅'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로이터와 테크크런치 등 보도를 종합하면 미국 핀테크 기업 로빈후드는 '로빈후드 벤처펀드 II(RVII)'를 오는 13일 주당 25달러(약3만5500원)의 가격으로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할 예정이다. 이번 공모를 통해 최대 2억달러(약 2800억원)를 조달한다. 주요 투자 대상은 현재 또는 과거 YC를 거친 스타트업 지분이다.
투자자가 스타트업 지분을 직접 보유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 여러 비상장 기업의 지분을 담은 펀드 주식을 사고팔 수 있다. 기존에는 VC 펀드나 특수목적법인(SPV)에 참여해야 가능했던 실리콘밸리 초기기업 투자를 증시를 통해 간접적으로 할 수 있게 된 것.
이 펀드는VC 업계의 일반적인 '2% 운용보수·20% 성과보수'(2·20구조) 체계를 적용한다. 또 YC 출신 스타트업들이 기업공개(IPO)나 M&A 등 성공적인 엑시트에 성공해 펀드가 수익을 거둘 경우, 로빈후드 계열 운용 법인인 로빈후드벤처스가 이익의 20%를 성과보수(Carried Interest)로 가져간다.
다만 개인 투자자들의 수익 실현 구조는 다소 불투명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반적인 VC 펀드와 달리 RVII는 만기나 청산 시점을 명시하지 않았고, 투자 수익을 정기적으로 현금 배분하겠다는 계획도 공개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개인투자자들은 대부분 펀드 주가 상승에 따른 자본차익에 의존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고 테크크런치는 지적했다.
앞서 출시된 로빈후드 벤처펀드 I(RVI)는 데이터브릭스, 오픈AI, 머코어 등 비상장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로 공모가인 21달러에 상장했다. 지난 6일(현지시간)에는 공모가를 웃도는 약 28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다만 지난 5월 한때 56달러를 넘었던 점을 감안하면 주가 변동성 커 손실 위험도 크다.
로빈후드는 앞서 비상장 기업 투자상품을 둘러싸고도 논란을 빚었다. 지난해 오픈AI와 스페이스X의 주식에 연동된 '토큰화 주식(Tokenized Shares)'을 유럽 투자자들에게 선보였지만, 오픈AI는 해당 상품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토큰이 회사 지분과 무관하다고 공개적으로 반박했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업계 사기는 창업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투자자와 벤처투자 생태계가 함께 만들어낸 결과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임페리얼칼리지 런던과 프랑스 엠리옹 비즈니스스쿨 연구진은 최근 실리콘밸리 VC가 투자한 스타트업 창업가들이 어떤 방식으로 사기를 저지르는지, 또 그 과정에서 투자자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지난 6월 유럽의 국제 학술지 오거니제이션 사이언스에 공개된 해당 보고서는 2000년부터 2023년까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법무부(DOJ)가 민·형사상 증권사기 혐의로 기소한 기술기업 창업가와 스타트업 사례를 데이터베이스화해 분석했다.
보고서 공동저자인 팀 바이스(Tim Weiss)는 최근 테크크런치와의 인터뷰에서 "스타트업 업계에서 사기는 우리가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흔하며, 어느 정도는 정상적인 일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는 창업자만이 아니다"라며 "창업자에게 비현실적인 고성장을 요구하는 투자자들도 문제를 함께 만든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AI 스타트업 투자 열풍 역시 창업자들을 사기로 유혹하기 쉬운 환경이라고 진단했다.
연구진은 창업자가 투자자의 기대와 실제 사업 성과 사이의 격차를 메우기 위해 점차 거짓말을 키워가는 과정을 '파사딩(Façading)'이라고 정의했다. 초기에는 성과를 과장하는 수준에서 시작하지만, 이후 허위 계약서와 가짜 매출 자료를 만들고, 나아가 실제보다 뛰어난 기술을 가진 것처럼 허위 시연까지 하는 단계로 발전한다는 설명이다.
연구진은 특히 투자자들도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무리한 성장 목표를 요구하는 것은 물론, 사기 의혹을 받았던 창업가에게 재투자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바이스는 이를 두고 "투자자도 사기를 공동으로 만들어낸다(co-create fraud)"고 표현했다.
그는 SEC가 일정 규모 이상의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에 대해서는 정기적인 조사와 감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재는 내부고발이나 투자자 소송 등이 발생해야 SEC가 조사에 착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설명이다. 또 투자자들 역시 창업자에게 무리한 성장 목표를 강요한 데 대해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