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그래도 인간적이어야 하는 '법'

김지산 기자
2015.05.11 06:33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일주학원 설립자 이선애 여사의 별세 소식을 접하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유일한 아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상주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였다. 간암3기인 이 전 회장이 빈소를 지킨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생각돼서다.

발인이 치러진 10일, 기자는 이제 이 전 회장을 걱정한다. 생전에는 어머니를 지켜주지 못하더니 임종 이후에는 빈소조차 찾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를 어떻게 생각할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이 전 회장 모자(母子)에게 검찰의 법 집행은 가혹할 정도로 엄정했다. 보통 같은 혐의로 가족 둘이 피소될 경우 구속은 1명만 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하지만 태광그룹에는 달랐다. 이선애 여사는 횡령 등 혐의로 2012년 2월 법정구속 돼 구치소 생활을 했다. 이 여사가 84세 때 일이다.

그 무렵 이 여사의 상태가 어땠을지 짐작할 수 있는 일이 벌어진다. 구속된 지 2개월째인 2012년 4월, 핫팩(손난로)에 손가락이 3도 화상을 입었다. 인지·감각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 탓이다.

이 여사 측은 그 시기 치매, 고령성 뇌경색, 대동맥류, 허리뼈 골절 등을 이유로 형집행을 정지해달라고 신청했고 신청은 받아들여졌다.

2년 뒤인 2014년 3월, 이 여사는 구치소에 재수감된다. 검찰이 "병원 치료를 받아 수용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건강상태를 회복했다"며 형집행정지 연장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아서다. 검찰 형집행심의위원회는 급성 뇌경색이 상당히 치유됐고 치매 증상도 완화되는 단계에 있다는 의학적 판단을 근거로 내세웠다.

이 여사 측의 형집행정지 신청이 이어지자 재수감 3개월만인 그해 6월 검찰은 전문의 결정이 더 필요하다며 판단 유보를 결정했다. 서류만 가지고는 판단하기 어렵고 직접 가서 두 눈으로 상태를 확인해봐야겠다는 이유에서다. 검찰 눈에는 꾀병정도로 보였던 모양이다.

이 여사는 한 달 뒤인 7월 구치소에서 나와 병원에 다시 입원했다. 그러나 '골든타임'을 놓친 뒤였다. 병원 생활 내내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사실상 식물인간 상태로 지내왔다.

법은 이호진 전 회장에게도 모질었다. 2011년 초 횡령·배임 등 혐의로 구속된 직후 간암 3기 판정을 받았다. 9시간 수술에서 전체 간의 40%를 잘라냈다. 3주일 뒤 환자는 다시 법정에 섰다. 오전 10시에 시작된 재판은 밤 8시가 돼서야 끝났다. 피로는 간에 독이나 다름없지만 법원은 냉정했다. 그는 오늘날까지 적당한 생체 이식 대상자를 찾지 못한 채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 그러나 법이라는 게 사람을 지키고 살리기 위한 수단이고 보면 무엇보다 인간애가 요구된다. 모자를 동시에 기소·구속하는 건 지나치다는 원망이 재계에서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모친의 빈소조차 지키지 못한 처절한 아픔이 그를 어떤 지경으로 몰아갈지 모르겠다. 이들 모자에게서 잠시만이라도 인간으로서 미움을 거둬들이고, 인간애를 표하는 게 법의 정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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