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 시절 허리띠 졸라맸지만, 저유가인데 왜?

최성근 기자
2016.01.15 17:01

[소프트 랜딩]저유가의 패러독스…불안심리가 소비·투자 부진으로 이어져

[편집자주] 복잡한 경제 이슈에 대해 단순한 해법을 모색해 봅니다.
/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

요즘 저유가 때문에 경제가 불안하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그런데 기름값이 떨어지는 데 경제가 안 좋아진다니 얼핏 봐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기름값이 싸지면 기름을 많이 소비하는 우리나라 경제에는 도움이 되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이런 상식으로는 요즘 저유가 상황을 이해하는 게 쉽지 않는다.

먼저 국제유가가 고공행진을 했던 불과 5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2011년 아랍의 봄을 전후로 국제유가는 배럴당 110달러에 육박했다. 아랍세계 독재 정치에 대한 항거가 들불처럼 번지면서 중동 산유국의 위기가 크게 고조됐다. 더불어 이란과 미국의 갈등이 고조돼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기가 붉어지면서 2011년 3월에는 국제유가가 한때 배럴당 무려 124달러(두바이유 기준)에 이르렀다.

국제유가(두바이유 기준)는 금융위기 이후 2010년에 배럴당 연평균 78달러에서 2011년 106달러, 2012년 109달러, 2013년 105달러를 유지했다. 그야말로 지난 수십 년간 볼 수 없었던 국제유가 ‘100달러 시대’였다.

이 당시만 해도 우리 경제는 초고유가 시대를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 150달러, 200달러에 진입하게 되면 어떻게 하느냐며 노심초사했다. 그래서 중동에서 분쟁위기가 고조될 때마다 우리는 ‘제3의 오일쇼크’의 발생을 걱정했다.

기업들은 유가 상승에 따른 비용 상승 부담을 우려했고, 투자와 소비 위축으로 수출과 내수 침체를 우려했다. 때마다 터져나오는 중동발 리스크와 원유 수급 리스크를 완화시키기 위해 정부는 해외자원개발에 막대한 돈을 투자했고, 석유비축량을 늘렸다.

그런데 마냥 고공행진을 할 것 같았던 국제유가는 2014년 들어 배럴당 100달러가 무너졌고(연평균 97달러), 작년에는 배럴당 연평균 51달러로 떨어졌다. 불과 2년 사이에 국제유가가 반 토막이 난 셈이다. 국제유가는 새해 들어서도 하락세를 지속했고 이제 배럴당 30달러 선마저 위태한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제 우리가 그동안 그토록 두려워하고 걱정했던 오일쇼크니, 석유부족 사태를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 듯 했다. 기업은 비용부담이 줄어드니 자연스레 수익이 늘어날 것이고, 고유가 시절에 우려했던 소비와 투자도 늘어나 경제가 좋아질 것만 같았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제유가가 10% 하락하면 국내총생산(GDP)이 0.27%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아이러니하게도 저유가가 대내외 경제에 호재가 아닌 악재로 작용하는 모양새이다. 먼저 유가가 급락하면서 산유국을 중심으로 신흥국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이는 신흥국의 실물경기 및 재정 악화를 가져왔고, 특히 미국 금리인상 이벤트와 더불어 신흥국 금융시장 전체가 불안에 빠져드는 요인이 됐다.

게다가 그동안 세계 경제를 주도하며 석유를 비롯한 글로벌 자원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던 중국 경제가 구조개혁과 경기 부진으로 자원 수요가 크게 줄어든 상황에 빠졌다.

한편 저유가로 인한 신흥국 경기 부진과 수요 침체는 우리나라 총수출 감소로 이어졌다. 특히 수출 주력 분야인 석유제품과 석유화학 등의 수출단가가 급락하면서 총수출 부진을 낳았고, 이는 성장률 하락의 주된 요인이 됐다. 더불어 저유가에 따른 산유국 경기 악화로 유조선과 석유 개발 수요가 줄어들면서 조선업, 건설업, 철강 산업 등도 부진을 면치 못하게 됐다.

아리송하기만 할 뿐이다. 저유가가 우리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경제 분석이나 상식과 달리 현실은 완전히 상반된 결과를 낳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 경제 분석 자체가 틀린 걸까?

경제 분석이 현실과 맞지 않는 것은 분석 자체가 틀려서가 아니다. 과거에는 경제성장에 필요한 유효수요가 충분한 상황이었다면, 지금은 그러한 수요 자체가 부진하거나 줄어든 ‘수요 부족’ 상황으로 여건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즉 유가라는 하나의 변수만 달라진 게 아니라 유효수요라는 또 다른 변수도 바뀐 것이다.

더욱이 저유가에 따른 물가 하락은 디플레이션 우려마저 증폭시키고 있다. 저유가 상황이 길어지면 물가가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 심리가 확산되고, 소비자는 소비를 더 미루게 된다. 결국 소비는 침체되고 물건이 팔리지 않으니 기업은 투자와 고용을 줄일 수밖에 없게 된다.

이는 다시 가계 소득 감소로 이어져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게 된다. 저유가가 저물가를 강제하고, 저물가는 다시 소비와 투자 부진으로 이어져 결국 경제 불황을 낳게 되는 것이다.

국제유가는 어느새 배럴당 100달러에서 30달러 시대가 됐다. 돌이켜보면 우리 소비자들은 과거 고유가 시대에서 치솟는 물가부담으로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반전돼 저유가 시대가 도래했지만 소비자들은 여전히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패러독스에 빠져 있다.

저유가가 경제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은 이제 교과서에나 나오는 막연한 기대에 불과해 보인다. 소비자들은 불안심리 때문에 소비를 줄이고 있고, 불황의 골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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