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떠받치는 국가경제] (下)
![[서울=뉴시스] 김명년 기자 = 김민석 국무총리가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9회국회(정기회) 제7차 본회의 '경제에 관한 질문'에서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5.09.17. kmn@newsis.com /사진=김명년](https://thumb.mt.co.kr/cdn-cgi/image/f=avif/21/2026/02/2026021817422848500_1.jpg)
기업들이 국가 경제를 이끌고 있는데 정치권은 도와주기는커녕 줄곧 발목을 잡는단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여권을 중심으로 경제계가 반대해온 법안들은 연이어 강행 처리하면서 기업이 필요성을 호소하는 법안들은 외면해온 탓이다. 재계 안팎에선 글로벌 경쟁 무대에서 모래주머니를 차고 달리는 꼴이란 불만이 나온다.
대표적인게 배임죄 개선 요구다. 여당은 기업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1·2차 상법 개정안 등을 최종 의결했고 3차 상법 개정안까지 통과를 앞두고 있지만 배임죄 개선 약속은 아직 지키지 않고 있다.
재계는 우리나라 배임죄가 '재산상 손해 발생 가능성' 등 구성요건이 추상적이고 불명확해 기업인의 정상적 경영활동을 위축시킨다고 우려한다. 성공을 확신할 수 없는 신사업 투자나 M&A(인수합병) 등 모든 경영판단이 사실상 잠재적인 배임죄 리스크에 노출된단 주장이다.
이 때문에 배임죄가 아예 없는 영국이나 미국처럼 사기, 횡령죄로 해결하자고 제안한다. 배임죄를 그대로 둔다면 '경영판단원칙(정상적 절차와 합당한 근거로 결정한 사안에 대해선 추후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을 명문화하고 고의적인 위법행위만 처벌하도록 구성요건을 개선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담고 있는 3차 상법 개정안에도 신중해야 한단 입장이다. 대부분 선진국에서 자사주 소각을 법으로 강제하지 않는 점 등을 들어 다양한 경영 전략 수행을 방해할 수 있단 이유에서다.
재계는 M&A 등에서 비자발적으로 취득한 '특정 목적에 의한 자사주'만이라도 보유를 허용하든지 소각을 유예해달라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 역시 관련 논의 초기부터 재계는 강하게 반대했지만 여당의 독주를 막지 못했다. 다음달 10일 시행을 앞두고 유예가 필요하단 의견이 지배적이지만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11일 대정부질문에서 "시행을 미루면 더 큰 혼란이 온다"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재계는 부작용 완화를 위해 정부에 노동조합법 해석지침 보완을 요청하고 있지만 이마저 수용 여부가 불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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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부는 지난해말 개정 해석지침(안)을 발표하며 산업안전보건법상 원청의 법적 의무 이행과 별개로 산업안전보건체계 전반을 실질적으로 지배·통제하는 경우 실질적 지배력을 인정해 사용자성을 판단하기로 했다. 하지만 사용자 판단 예시가 너무 포괄적이라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하청 근로자를 대상으로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이행한 원청까지 사용자로 인정될 수 있단 볼멘소리가 나온다.
원청이 법적 의무가 없음에도 하청의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조치를 한 경우 오히려 이로 인해 사용자성이 인정될 수 있단 걱정도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으로 구성된 '경영계 노조법 개정 대응 TF(태스크포스)'는 지난달 고용부에 전달한 입장문에서 "안전을 위해 노력할수록 교섭·파업 등 법적 리스크를 더 많이 부담하는 모순이 발생한다"며 "하청과 하청 근로자에 대한 안전관리 지원이 위축되는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김 장관은 이와 관련해서도 "원청이 하청 안전조치를 강화한다고 해서 곧 사용자성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고, (인정)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세계 최고 수준(최대주주 할증 포함 60%)의 상속세도 기업들을 짓눌러 온 고질적 부담 중 하나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38개국 중에 15개국은 아예 상속세가 없고 부과하는 나라들도 평균 세율이 27% 수준에 불과하다. 재계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상속 증여세 과세체계가 강화된 채로 26년간 그대로 유지된 반면 해외 주요국은 상속 증여세를 폐지하거나 완화하는 추세"라며 "높은 세금 부담은 기업의 투자, 고용 활동을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재계는 단기적으론 다른 나라보다 과도하게 높은 세율을 인하하고 장기적으론 상속 증여세를 폐지하고 자본이득세(현금화 시점에 과세하는 방식)로 전환하는 방안을 제시해왔다.
이밖에 2011년 처음 발의된 이후 15년째 공전을 거듭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제정안, 대형마트 영업규제를 완화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등도 기업들이 오랫동안 개정을 건의해온 법안들이다.
![[서울=뉴시스] 조성우 기자 = 1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세미콘 코리아 2026를 찾은 관람객들이 반도체 웨이퍼를 살펴보고 있다. 2026.02.11. xconfind@newsis.com /사진=조성우](https://thumb.mt.co.kr/cdn-cgi/image/f=avif/21/2026/02/2026021817422848500_4.jpg)
기업인들이 말하는 경영 활동의 가장 큰 장애는 규제다.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엔 기업을 규제 대상으로만 바라보던 입법부의 시각에 분명한 변화가 읽힌다. 과거의 낡은 관행을 바꾸겠다는 의지가 확고하지만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는 목적 의식도 확실해 보인다. 먹고 사는 문제에 가장 관심이 큰 유권자들의 눈높이도 더 높아졌다. 기업을 옥죄기보다는 독려해 투자를 유치하고 일자리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가 많다.
국회에선 성장동력 업종을 집중 지원하는 각종 특별법이 속속 통과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석화지원특별법(석유화학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법)은 업계 구조조정을 위해 꼭 필요한 지원법이었다. 국가와 지자체가 사업재편과 고도화를 추진하는 기업을 세제로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를 담고 있다
지난달 29일 본회의를 통과한 반도체특별법(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 역시 산업계가 간절히 바라던 법이다. AI(인공지능) 시대 개막으로 데이터센터, 로봇 등에 필요한 반도체 수요는 앞으로 계속 폭발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시장 요구에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반도체 산업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개별 사업별로 분산돼 있던 반도체 지원 정책을 대통령 산하 '반도체특위'가 총괄한다. 각종 제도 지원이 빨라지고 예산 집행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여야간 이견 등으로 빠지거나 좀체 속도가 나지 않는 입법 조항과 사례도 있다. 재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던 주 52시간 근로제 예외 적용 조항은 이번 반도체특별법에서 아예 빠졌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3차 상법 개정안은 쟁점이 작지 않다. 여권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기업 경영권 사유화 방지, 소액주주 보호 측면에서 필요성을 강조한다. 기업들은 재무적 유연성 제약과 경영권 방어 수단 약화에 대한 우려를 내놓는다. 입법 과정에서 어떤 결론이 날지 주목된다.
배임죄 폐지 등 이미 예고된 기업 지원 법안의 신속한 처리를 바라는 목소리도 높다. 배임죄는 대표적 기업 규제 법안인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과 상법개정과 함께 논의가 시작됐지만 국회와 정부가 서로 떠넘기며 차일피일 처리가 미뤄지고 있다. 속도가 있는 입법으로 기업 활동의 불확실성을 줄여줘야 한다는 요구가 많다.
배임죄는 모호한 구성 요건과 선진국보다 무거운 처벌 규정으로 그간 정상적인 기업 경영 활동을 방해한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안태준 한양대 교수(로스쿨)는 최근 세미나에서 "실패할 가능성이 있는 경영 판단까지 범죄로 몰아갈 소지가 있어 합리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상속세법 개정도 마찬가지다. 기업을 상속하려면 기업을 포기해야 하는 비정상적인 세제를 손보다는 게 골자다. 상속세법을 합리적으로 바꿔 창업은 물론 기존 기업들의 적극적인 재투자를 유도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자는 것이다. 정치권에 베임죄 폐지 입법 작업에 속도를 내 달라는 게 기업들의 바람이다.

반도체 등 주력 산업의 호황으로 한국 경제가 날개를 달면서 정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9%로 상향조정하면서 반도체 경기 호황을 이유로 들었다. 기업이 국가 경제를 이끌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로봇, 원전 등 주력 산업의 호황이 단발성에 그치지 않도록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규제 철폐, 산업 인프라 구축 등에 더해 기업이 예측 가능한 환경 속에서 경영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단 조언이다.
◇기업이 떠받치는 韓경제…정부 역할 있었나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반도체 산업은 주요국에서 국가의 명운을 걸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상대적으로 뒷북지원이 이뤄지는 것 같다"며 "정부가 '위너피킹'(winner picking·정부의 선별적 산업 육성)을 할 능력이 부족하다. 유망 산업의 경우 기업 활동에 걸림돌이 되는 건 정부가 제거해줘야 한다"고 했다. 기업의 편의를 봐주는 것이 아닌 생존의 문제인 만큼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단 취지에서다.
홍기용 인천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가지려면 다른 나라에 비해 눈에 띌 정도로 대규모 지원을 해야 한다"며 "한국에만 존재하는 규제와 글로벌 기준과 추세에 어긋난 과세표준, 세율 등이 경영자들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측 가능한 기업활동이 가능하도록 오히려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 산업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단 지적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이 의사결정할 때 예측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며 "계속해서 제도를 바꾸면 기업 활동엔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다. 오히려 규제나 기반 시설, 인재양성 등 기업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에 정부가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꼭 기업을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경제활동을 잘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단 의미"라며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정부가 특정 산업을 보호하려고 시장에 개입하니 생산성이 낮아지고 소득이 줄다 보니 또 보호할 곳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작은 정부를 지향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규제만 하지 말아달라"…기업의 혁신성장 가로막는 '규제 감옥'
기업을 짓누르는 규제를 풀어야 한단 목소리도 잇따랐다. '규제 감옥'이 기업들의 국내 투자를 막고 혁신성장을 이루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어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규제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니거나 세계적으로 적용되지 않는 경우, 경기 사이클에 따라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며 글로벌 추세에 맞는 제도를 갖추기 위해 유연성을 갖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강인수 교수는 "규제철폐 등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부분에 있어서 정부가 조정을 잘해야 하는데 조정기능이 다소 취약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예컨대 반도체는 주 52시간 규제에 묶여 R&D(연구개발) 투자를 하기 어렵다고 아우성"이라며 "'제발 규제만 하지 말아달라'는 게 대부분 기업의 청원으로 이를 하루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기용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 노란봉투법, 상법개정안 등 노동자를 위한 정책의 비중이 상당히 큰데, 앞서나가진 않더라도 뒤처지지 않도록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상속세율도 세계 최고 수준이고 법인세 부담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상위권이다. 나중에 보완하려면 늦기 때문에 하루빨리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