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박용만의 일갈과 이재용 딜레마

최석환 기자
2019.07.09 04:30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 입니다.

"털끝 하나인들 병들지 않는 부분이 없습니다. 지금 당장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야 말 것입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귀양지인 다산초당에서 1817년에 완성한 '경세유표' 서문이다. 죄인 신분인 상황에서도 국가 경영 큰 그림과 이를 위한 세부 개혁안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절박함을 '유언으로 올리는 건의서'라는 의미의 '유표(遺表)'에 담았다. 오래된 나라를 개혁해 새로운 국가를 꿈꾸었던 다산의 '조선'은 이후 100년이 채 되지 않아 망국의 설움을 안고 역사에서 사라졌다.

최근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다산의 심정을 대변이라도 하듯 정치권을 향해 참았던 분노를 드러냈다. 경제활성화를 위한 각종 혁신 대책과 규제 개혁안이 국회 공전으로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멈춰버린 현실에 대해 "무력감이 말도 못하다"며 울분을 쏟아낸 것.

박 회장은 "여당·야당·정부 모두 경제위기라는 말을 입에 담지 말아줬으면 좋겠다"며 "위기라고 말을 꺼내면 듣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 억장이 무너진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그러면서 "살기 팍팍한 것은 기업이나 국민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한 뒤 "정치가 기업과 국민 살림살이를 붙들어줘야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랜 세월 서서히 골병이 들고 있고 정치는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정치 때문에 고장난 '경제' 현장은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물론 그로 인한 피해는 기업과 국민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 일본 무역 보복 조치도 그 사례 중 하나다.

전 정권이든 이번 정권이든 '정치'가 매개가 된 한일 관계의 '업보'는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우리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파급 효과를 현재로선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당장 일본의 타깃이 된 삼성그룹에선 정치권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 분위기다. 청와대가 급할 땐 수시로 총수를 부르면서 "재판은 재판, 경영은 경영, 경제는 경제"라고 선을 긋고 있어서다.

일단 이재용삼성전자부회장은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일본으로 출국했지만, 검찰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 혐의 수사와 관련해 그의 소환을 저울질하고 있다. "오는 10일 재계 간담회를 주재하는 문재인 대통령에 이어 결국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를 만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자조 섞인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박 회장이 "이제 제발 정치가 경제를 좀 붙들어줄 것은 붙들고 놓아줄 것은 놓아줘야 할 때"라고 던진 일갈을 곱씹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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