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9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했지만 운신의 폭을 넓히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일단 재구속이라는 최악의 사태는 피했지만 검찰이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미중 무역분쟁과 일본 수출 규제 등 대내외 경영여건이 녹록지 않은 것에 비춰볼 때 오히려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원정숙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새벽 2시쯤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됐고 검찰은 그간의 수사를 통해 이미 상당 정도의 증거를 확보했다고 보인다"며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 부회장이 일단 구속을 피했지만 삼성에서는 완전히 안심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2017년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사건 당시에도 법원이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첫번째 구속영장은 기각했다가 재청구된 구속영장을 인용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전날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이후 서울구치소에 대기하다 자택으로 귀가한 이 부회장은 당분간 변호인단과 함께 향후 재판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준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변호인단이 신청한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에서 기소 의견이 나올 경우 재판에서 진실을 밝히는 데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이미 진행 중인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와 함께 사법 리스크가 확대되면서 경영 보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분석된다.
변호인단은 이날 영장 기각 직후 입장문을 내고 "향후 검찰 수사 심의 절차에서 엄정한 심의를 거쳐 수사 계속과 기소 여부가 결정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현재 반도체 사업을 책임지는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을 중심으로 비상경영 계획 수립에 착수한 상태다. 그만큼 대내외 경영여건이 좋지 않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앞서 공개한 '뉴삼성'의 밑그림을 바탕으로 오히려 공격적인 경영행보에 나설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특히 삼성전자가 2016년 약 9조원에 인수한 미국의 자동차 전장(전자장비)업체 하만 이후 아직까지 이렇다 할 M&A(인수·합병)가 없다는 점에서 삼성의 M&A 시계가 재가동될 수 있다는 관측도 끊이지 않는다.
페이스북이 최근 움직이는 이미지 콘텐츠업체 지피를 4억달러(약 4800억원)에 인수하는 등 알파벳(구글 모회사),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의 5대 IT 기업들은 올 들어 지난달 26일까지 총 19건의 M&A 및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대국민 사과 발표 당시 본인의 신상과 상관없이 "끊임없는 혁신과 기술력으로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면서도 신사업에 과감하게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삼성전자는 평택캠퍼스 EUV(극자외선) 파운드리(10조원)에 이어 낸드플래시(9조원) 등 총 10조원 규모의 추가 계획을 잇따라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현재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의 파운드리 공장 대규모 증설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그룹이 사회적 신뢰 회복을 위해 노조·시민사회단체 등과 적극적인 소통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삼성그룹은 최근 해고노동자 김용희씨와 고공 농성 해제에 극적으로 합의했다.
재계 한 인사는 "해외 기업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 미래 먹거리 확보에는 공격적 투자가 반드시 뒤따른다"며 "삼성 특유의 대규모 투자와 M&A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