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광고를 혐오한다(I hate advertising)."
테슬라와 스페이스X를 이끄는 일론 머스크 CEO(최고경영자)가 지난 2019년 트위터(현 X)에 남긴 말이다. 이 짧은 문장에 머스크의 경영 철학이 녹아 있다. 광고·마케팅비를 최소화하고 그 예산을 연구개발(R&D)에 쏟는다. 마케팅은 머스크의 '원맨쇼'면 충분하다. '미래의 설계자'이자 '아이언맨'인 머스크 브랜드가 곧 움직이는 광고판이다.
머스크의 존재감과 말 한마디는 어떤 마케팅 캠페인보다 강력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2023년 테슬라의 디지털 광고 지출은 약 640만 달러(약 90억원)였다. 같은해 GM이 글로벌 광고와 홍보에 36억 달러(약 5조원)를 쓴 것과 비교하면 거의 안 쓴 수준이다. 톰 나라얀 RBC캐피털마켓츠 글로벌 자동차 수석연구원은 WSJ에 "테슬라는 이미 매우 특별한 브랜드를 가지고 있고 일론 머스크는 그 브랜드의 일부"라며 "브랜드를 위해 돈을 낭비하지 않으면서 큰 사업을 운영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CEO(최고경영자) 개인이 브랜드가 되는 시대다. 머스크뿐 아니다.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오픈AI의 샘 올트먼, 엔비디아의 젠슨 황,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등 비슷한 사례는 넘쳐난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와 유튜브가 흐름을 가속했다. '보이지 않는 경영자'는 이제 설 곳이 없다.
유능한 경영자, 신사업 개척자 등의 타이틀은 기업인에게 기본이다. 이제는 글로벌 셀럽이자 올라운드 플레이어여야 한다. SNS를 중심으로 형성된 온라인 팬덤과 오프라인 소비자, 모두와 직접 호흡하고 소통해야 한다. CEO 개인의 매력이 기업의 무기가 되는 시대, 바야흐로 'A·C·E 기업인'의 등장이다. 만능(All-round) 셀럽(Celeb)이자, 만능(All-round) 활동가(Campaigner)인 기업인(Enterpriser)을 뜻한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머니투데이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지난 22~24일 전국 성인 남녀 10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업인 관련 인식 조사'(오차범위 ±3.1%포인트, 95% 신뢰수준)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60%)이 호감가는 기업인 1위에 올랐다.
경영 능력만이 이유가 아니었다. △인성·성품이 좋아서(8%) △친근해서(5%) △기부·봉사 등 사회에 공헌해서(4%) △외모·인상이 좋아서(4%) 등이 함께 거론됐다. 글로벌 기업 삼성을 이끄는 총수의 다양한 면에서 사람들이 호감 포인트를 잡은 것이다. 온라인에선 이 회장에게 '유튜브 개설'을 요청하고, 그의 '쉿' 포즈는 밈(meme, 온라인 유행 콘텐츠)이 돼 퍼진다. 재계 관계자는 "이 회장의 친근한 이미지는 곧 '더 친숙한 삼성'이라는 브랜드 이미지 제고로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4%, 1순위만 선택시)이 2위에 오른 배경도 같은 맥락이다. 가장 큰 호감 요인은 '의리가 있어서, 박력 있어서'(14%)였다. '야구 구단에 투자를 많이 해서'라는 답도 7%에 달했다. 김 회장은 2025년 프로야구 시즌, 경기장을 찾아 팬들과 호흡했다. 패배한 날에도 불꽃 축제로 팬들을 위로했다. 대중은 그에게서 '의리'와 '신뢰'를 읽었다. 한화그룹의 상징적 키워드가 총수 개인을 통해 증명된 셈이다.
A·C·E 기업인의 필요성은 3·4세 경영 체제에서 더 절실하다. 과거 창업주나 2세들이 무일푼에서 회사를 일군, '맨손 신화'라는 서사로 리더십을 확보했다면 승계받은 3·4세는 조건이 다르다. 능력과 리더십을 스스로 입증하는 것은 물론, 고도의 사회적 역할까지 요구받는다. 국민들은 이번 조사에서 기업인의 필수 능력으로 '인성·도덕성'(27%)을 '전문성'과 동등한 수준으로 꼽았다.
실제 비교적 젊은 3·4세 경영인들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적극적으로 브랜드 구축에 나서며 새로운 시대와 동행할 채비를 하고 있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은 지난해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식 참석 등을 통해 민간 외교관의 면모를 보였다.
정기선 HD현대 회장은 'CES 2024'에서 가수 지드래곤과 함께 가상현실(VR) 트윈 체험을 함께 하며 관심을 끌었다. 정용진 신세계 회장은 SK그룹으로부터 프로야구단을 인수하며 소비자 접점을 넓혔다. 형식 파괴이자 새로운 동행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요즘은 기술 평준화로 제품간 품질 차별성이 줄었다"며 "이제 브랜드에 감정이나 이미지가 추가돼야 구매가능성이 높아지는데 총수가 가진 브랜드 가치 역시 소비를 유도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