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E 회장님이 온다
'만능(All-round) 셀럽(Celeb) 기업인(Enterpriser)'이자 '만능(All-round) 활동가(Campaigner) 기업인(Enterpriser)'이 요구되는 A·C·E 시대 기업인들의 현재와 미래를 짚어본다.
'만능(All-round) 셀럽(Celeb) 기업인(Enterpriser)'이자 '만능(All-round) 활동가(Campaigner) 기업인(Enterpriser)'이 요구되는 A·C·E 시대 기업인들의 현재와 미래를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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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그리고 젠슨 황 엔비디아 CEO(최고경영자). 글로벌 거물들이 어깨를 걸었다. 이른바 '깐부 치맥 회동'. 구름 인파 속에서도 자유로웠다. 비즈니스 미팅은 격식을 깼고 대중과 거침없이 섞였다. 과거라면 상상하기 힘든 파격이다. '은둔의 경영자'는 옛말이다. 대중은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환호하며 기꺼이 '팬덤'을 자처한다. 회장님은 이제 '셀럽'(Celebrity ·유명인)이다. 대한민국 '회장님'들이 달라지고 있다. 무대 뒤편이 아닌 전면에 선다. 기업 컨설팅회사 플랫폼 9¾의 유민영 대표는 "뉴 오너십의 등장"이라고 정의했다. "AI(인공 지능) 패권 경쟁과 불확실성이 커진 시대적 요구에 따른 변화"(플랫폼 9¾, 전망 6호 패권)라는 설명이다. 총수들의 경영 방식은 진화했고 그 스스로 기술과 혁신의 상징자본이 됐다. 직접 뛰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절박함이자 자신감의 발로다. 그리고 그런 모습에 소비자이자 주주인 대중은 열광한다. 5일 머니투데이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지난달 22일부터 24일까지 전국 성인 남녀 10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업인 관련 인식 조사'(오차범위 ±3.
"한 가지 더(One more thing)"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신제품 발표 때마다 내뱉은 이 말에는 청중을 단번에 사로잡는 힘이 담겨 있었다. 그는 검은 터틀넥과 청바지라는 고정된 스타일을 통해 애플의 단순함과 완성도를 시각적으로 각인시키며 기업의 총수를 단순한 관리자에서 혁신을 이끄는 대중문화의 주인공으로 끌어올린 인물이다. 이를 통해 애플의 제품 발표회는 기술 설명의 자리를 넘어 하나의 무대가 됐고 잡스의 등장은 그 자체로 혁신을 상징하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기술 이해도와 스토리텔링 역량, 상징성을 동시에 갖춘 인물이라는 점에서 잡스는 'A·C·E 기업인'(All-round Celeb & Campaigner, 올라운드 셀럽·활동가 기업인)의 원조라 할 만하다. 잡스 이후 대표적 스타 기업인은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다. 머스크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혁신은 없다(Risk is an essential part of innovation)"는 자신의 말처럼 기업 경영 전반을 공개된 실험의 장으로 만들었다.
국내 재계 총수들이 시대가 요구하는 '올라운드 플레이어'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혁신성과 리더십, 전문성을 갖춘 실질적인 경영 역량이 필수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시대적 흐름에 맞춰 사회와 동행하려면 투명한 지배구조와 책임 있는 의사결정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기업지배구조개선위원회 자문위원장, 한국금융학회장 등을 역임한 최운열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전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은 "재계 총수들이 대중과 소통을 확대하고 대외 활동에 나서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진정성과 성실성"이라며 "결국 선대 회장의 후광이 아닌, 스스로의 역량으로 기업을 경영해 나가고 있다는 걸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밝혔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과 명예교수도 "이제는 기업 총수들이 관리자 이상의, 기업의 가치와 고객을 직접 창출하는 시대"라며 "소셜미디어 활용 등에 있어서는 경영인 스스로 기업의 목적과 철학, 즉 'Why'(이유)를 깊이 생각하며 방향성을 갖고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사회의 특수성에 대한 분석도 있었다.
국내 주요 그룹 총수의 활동 스타일은 주력 사업 분야, 개인 성향에 따라 제각각이지만 '은둔형'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건 공통점이다. 외부와 활발히 교류하며 그룹 실적 개선, 이미지 제고에 노력하는 총수를 선호하는 시대 변화가 이들을 '무대'로 끌어내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재계 총수 가운데서도 대외 활동 반경이 단연 넓다. 수시로 세계 주요국을 오가며 글로벌 기업과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그룹 미래 경쟁력을 키우는 한편 관세 문제 등 국가적 이슈가 발생하면 물밑에서 누구보다 강력한 '민간 외교 사절단'으로 변신한다. AI(인공지능)·전장(차량용 전자·전기 장비) 등 신성장 분야를 직접 챙기며 총수 간 네트워크를 활용해 성과를 바로 끌어내는 게 무기다. 지난해 10월 샘 올트먼 오픈AI CEO(최고경영자)와 국내 회동 후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위한 공급의향서(LOI)를 체결한 것 등 대표적 사례는 계속된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총수들과는 언제든 전화 통화하고 개별 만남 약속을 직접 잡는다.
"재용이 형!", "10만 전자!". 사람들은 '회장님' 대신 '형'이라고 친근하게 불렀다. 지난해 10월 30일 서울 강남의 한 식당.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치킨과 맥주를 두고 마주 앉았다. 치맥을 곁들인 이른바 '깐부 회동'이다. 소비자와 주주, 직원 등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공식 회의도, 사업 발표도 아니었다. 사적인 만남 형식이었다. 정제된 무대도 준비된 연설도 없었다. '회장님'들은 소탈한 차림으로 웃고 떠뜰었다. 이 장면이 수백억원대 광고보다 강한 파급력을 만들었다. 글로벌 반도체와 자동차 산업을 대표하는 기업인들이 공식 회의실이 아닌 일상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은 그 자체가 파격이었다. 세 사람이 모였던 삼성동 매장은 '성지순례' 명소가 됐다. 온라인에서도 밈(Meme·온라인에서 반복 공유되면서 확산하는 문화 코드)처럼 번졌다. 총수를 향한 대중의 기대가 달라졌다. 권위와 거리감을 앞세운 엄숙함보다 자연스럽고 친근한 이미지에 반응한다.
"나는 광고를 혐오한다(I hate advertising). " 테슬라와 스페이스X를 이끄는 일론 머스크 CEO(최고경영자)가 지난 2019년 트위터(현 X)에 남긴 말이다. 이 짧은 문장에 머스크의 경영 철학이 녹아 있다. 광고·마케팅비를 최소화하고 그 예산을 연구개발(R&D)에 쏟는다. 마케팅은 머스크의 '원맨쇼'면 충분하다. '미래의 설계자'이자 '아이언맨'인 머스크 브랜드가 곧 움직이는 광고판이다. 머스크의 존재감과 말 한마디는 어떤 마케팅 캠페인보다 강력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2023년 테슬라의 디지털 광고 지출은 약 640만 달러(약 90억원)였다. 같은해 GM이 글로벌 광고와 홍보에 36억 달러(약 5조원)를 쓴 것과 비교하면 거의 안 쓴 수준이다. 톰 나라얀 RBC캐피털마켓츠 글로벌 자동차 수석연구원은 WSJ에 "테슬라는 이미 매우 특별한 브랜드를 가지고 있고 일론 머스크는 그 브랜드의 일부"라며 "브랜드를 위해 돈을 낭비하지 않으면서 큰 사업을 운영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0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 광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함께 무대에 오르자 젊은 관중은 환호했다. 그들은 삼성전자와 엔비디아의 주가창을 띄운 스마트폰을 흔들며 '회장님들'을 맞이했다. 황 CEO는 "저것을 보라"며 외쳤고 이 회장은 삼성전자와 엔비디아의 관계를 설명했다. 'A·C·E 회장님'의 역할은 빠르게 재정의되고 있다. 내부 의사결정의 정점에만 머무는 존재가 아니다. 이제는 투자 유치와 인재 확보를 결정짓는 핵심 변수로 인식된다. 글로벌 시장과의 소통 능력,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기업 가치를 가른다. '투자하고 싶은 회사', '일하고 싶은 회사'는 오너에게 달렸다. 5일 머니투데이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지난달 22일부터 24일까지 전국 성인남녀 10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업인 관련 인식 조사'(오차범위 ±3. 1%포인트, 95% 신뢰수준)에 따르면 '기업인의 자질과 능력, 이미지가 해당 기업의 주식 매수 등 투자 여부에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89%가 영향을 준다고 답했다.
우리 국민은 한국 기업인을 보며 '전략 자산' 이미지를 가장 많이 떠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인에게 기대하는 역할로는 '국가 경제 성장 기여'가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사회적 책임' 등 다른 응답도 골고루 나왔다. 바야흐로 'A·C·E 기업인'(All-round Celeb & Campaigner, 올라운드 셀럽·활동가 기업인) 시대다.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복합적 책무도 소화해야 한다.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기업인 상(像)이 요구된다. 5일 머니투데이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지난달 22일부터 24일까지 전국 성인 남녀 10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업인 관련 인식 조사'(오차범위 ±3. 1%포인트, 95% 신뢰수준)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인을 떠올리면 어떤 모습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전략 자산'이라는 응답이 25%를 차지했다. '엄청난 자산을 가진 부자'(25%)라는 답과 함께 가장 많았다. '미래를 개척하는 혁신가'(17%), '전문성과 글로벌 네트워크 등을 두루 갖춘 만능인'(16%), '강한 리더십을 갖춘 오너'(12%) 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