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은 제각각이지만…'무대'로 나오는 총수들

유선일 기자, 김지현 기자, 최지은 기자
2026.01.06 11:20

[A·C·E 회장님이 온다]⑥4인4색, 글로벌 무대 뛰는 회장님들

[편집자주] AI 대전환, 트럼피즘 심화 등 불확실성의 시기에 글로벌 무대를 뛰는 기업인들은 국경과 산업을 넘나든다. 투자와 외교의 경계가 모호할 전장에서 전천후 플레이어로 정치인, 주주, 소비자들과 소통한다. 이런 측면에서 뛰어난 기업인은 그 자체로서 회사의 최고 경쟁력이자 국가 전략자산이다. '만능(All-round) 셀럽(Celeb) 기업인(Enterpriser)'이자 '만능(All-round) 활동가(Campaigner) 기업인(Enterpriser)'이 요구되는 A·C·E 시대 기업인들의 현재와 미래를 짚어본다.

국내 주요 그룹 총수의 활동 스타일은 주력 사업 분야, 개인 성향에 따라 제각각이지만 '은둔형'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건 공통점이다. 외부와 활발히 교류하며 그룹 실적 개선, 이미지 제고에 노력하는 총수를 선호하는 시대 변화가 이들을 '무대'로 끌어내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재계 총수 가운데서도 대외 활동 반경이 단연 넓다. 수시로 세계 주요국을 오가며 글로벌 기업과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그룹 미래 경쟁력을 키우는 한편 관세 문제 등 국가적 이슈가 발생하면 물밑에서 누구보다 강력한 '민간 외교 사절단'으로 변신한다.

AI(인공지능)·전장(차량용 전자·전기 장비) 등 신성장 분야를 직접 챙기며 총수 간 네트워크를 활용해 성과를 바로 끌어내는 게 무기다. 지난해 10월 샘 올트먼 오픈AI CEO(최고경영자)와 국내 회동 후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위한 공급의향서(LOI)를 체결한 것 등 대표적 사례는 계속된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총수들과는 언제든 전화 통화하고 개별 만남 약속을 직접 잡는다. 세계 최고 수준인 이 회장의 탄탄한 인맥과 활발한 교류가 삼성의 핵심 경쟁력이다.

이 회장이 참석하는 공개 행사는 매번 화제를 모은다. 그가 착용한 의상이나 소품이 완판 사례로 이어지고 출장길에 들른 장소에서 직원이나 시민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이 온라인을 통해 확산하며 주목받는다. 이런 모습은 삼성그룹의 대외 이미지를 보다 친근하고 유연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온·오프라인을 종횡무진하며 대중과 소통의 폭을 넓히고 있다. 유튜브 채널 '김지윤의 지식 PLAY' 출연은 지난해 2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트랜스 퍼시픽 다이얼로그(TPD) 2025' 행사 현장에서 김지윤 박사와 우연히 마주치며 즉석 섭외됐다는 후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서 '민간 외교' 활동도 적극적이다. 지난해 경주에서 열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를 앞두고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등 스타 기업인들을 초대하는데 앞장섰다. 일본 '도쿄포럼 2025' 등에서는 한일 경제연대를 전면에 내세워왔다. AI에 대한 최 회장의 남다른 관심은 SK그룹의 전문성을 자연스럽게 어필하고 있다는 평가다.

[경주=뉴시스] 고범준 기자 = 29일 경북 경주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써밋에서 참석자들이 이재명 대통령의 특별연설을 경청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정기선 HD현대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의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장인화 포스코홀딩스 회장, 허태수 GS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2025.10.29. bjko@newsis.com /사진=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모빌리티 혁신에 초점을 맞춘 활동·교류가 두드러진다. 지난해 3월 미국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나란히 서 직접 대규모 미국 투자를 발표하고 조지아주 HMGMA(현대차그룹메타플랜트아메리카) 준공식에서 '모빌리티의 미래'를 강조한 것이 대표적이다. 최근 열린 기아 창립 8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80년의 헤리티지(유산)'를 강조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선 '도전'을 제시했다.

사업보국(기업으로 국가에 공헌한다) 철학도 누구보다 강조한다. 정 회장은 한미 관세 협상 과정에서 미국을 오가며 타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지원했고 자동차 관세 15%가 확정됐을 때는 "국가에 신세를 갚겠다"고도 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4대 그룹(삼성·SK·현대차·LG) 가운데 유일한 '40대 총수'다. 현장을 자주 찾아 임직원과 고객의 목소리를 듣는 행보로 재계에서는 '젊은 리더십'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임직원들에게 자신을 '회장' 대신 '대표'로 불러 달라고 당부해 실제 함께 근무하는 직원들은 '구 대표'라고 부른다.

지난 2019년 프로야구단 LG트윈스 구단주를 맡았을 때도 격의없이 직원들과 어울리며 소통했다. 당시 경영진에게 "몇 년 안에 우승보다 항상 우승권에 있는 팀을 만들자"고 주문하면서 단기적인 성과보다 견조한 토대 마련을 강조했다. 이런 철학은 그룹 전략 전반에도 적용됐다. 구 회장은 일찌감치 'ABC(AI·바이오·클린테크)'를 미래 성장축으로 제시하고 선택과 집중을 통한 경쟁력 강화를 추진 중이다.

업계는 4대 그룹을 넘어 재계 전반에서 '무대형 총수'가 부상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업계 관계자는 "대표적인 '은둔형 리더'인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이 직접 기자간담회에 나서 네이버파이낸셜과 두나무의 합병을 발표하고, 2세대 총수인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한화이글스와 서울세계불꽃축제를 지원해 다양한 세대와 폭넓게 소통하는 것 등은 '무대형 총수'를 원하는 시대의 흐름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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