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의 국제경제비상권한법(IEEPA)에 근거한 상호관세 무효 판결에도 불구하고 국내 반도체·가전 등 전자업계는 오히려 불확실성이 커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 모든 국가에 10%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등 즉각 대체관세 부과에 나선 탓이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가전기업들은 미 연방대법원의 상호관세 위법 판결의 여파와 미 행정부의 후속조치 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우선 반도체 기업들은 그동안 수시로 불거진 미국발 관세 리스크를 겪어왔지만 아직 정해진 사항이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말 한미 관세협정에서 대만 등 경쟁국보다 불리한 조건을 적용받지 않는 최혜국 대우를 얻어낸 이후에도 '미국에서 생산하지 않는 메모리 반도체에 100% 관세'(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와 같은 돌출 발언에 수시로 시달려왔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 불확실성이 해소된 측면도 있지만 여전히 반도체 품목관세는 정해진 바가 없고 반도체 파생상품인 스마트폰도 마찬가지"라며 "상황을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연방대법원의 판결 이후 뉴욕증시에서 알파벳, 아마존, 애플, 엔비디아, 메타 등 빅테크 기업들의 주가가 오르면서 시장은 일단 불확실성 해소에 힘을 실었지만 우리 기업들 입장에서는 크게 달라진 건 없다는 얘기다.
가전제품의 경우 미국에 수출되는 건 멕시코 공장에서 상당 부분 만들기 때문에 무관세를 적용받지만 철강·알루미늄 등 품목관세는 부과되고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애초에 IEEPA 근거가 아니었던 철강·알루미늄 등 품목관세는 계속 유효하고 기존 관세 무효를 만회하기 위해 품목관세를 더 강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등 불확실성이 커졌다"며 "상황 변화를 지켜보며 최적의 대응 방향을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대응에 나서고 있다. 무역법 122조에 근거해 전 세계를 상대로 10%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대통령의 보복관세 권한 등을 담은 무역법 201조와 301조, 관세법 338조 등 다양한 대응 수단을 예고했다. 판결 직후 긴급 기자회견에서 "궁극적으로 이전보다 더 많은 돈을 걷게 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미국의 관세정책 자체가 개별기업 차원에서 대응할 수 없는 문제라는 점도 재계의 고민이다. 정부의 외교적 해결 노력에 힘을 보태면서 다양한 시나리오를 준비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경제단체들도 공식 입장을 내지 않고 추이를 살피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워낙 변수가 많아 차분히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글로벌리스크팀장은 "상호관세에 대한 법적판단은 마무리됐지만 정책적 불확실성은 여전하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