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발 전력 인프라 수요가 급증한 가운데 선박·건설기계용 엔진이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폭증하는 전력 수요를 전력망 확충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자 데이터센터 사업자들이 자체 발전 설비 구축을 위해 기존 가스터빈 외 타 업종의 엔진까지 확보하고 나선 것이다. HD현대그룹 계열사 등이 신규 수혜처로 거론된다.
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HD건설기계는 올해 하반기 전북 군산에 신규 엔진 공장을 가동하고 AI 데이터센터용 초대형 엔진 등을 생산할 예정이다. 이를 기반으로 지난해 3700억원 수준이던 발전기용 엔진 매출을 2030년 8000억원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HD현대중공업 역시 최근 미국 에이페리온 에너지 그룹(AEG)과 선박엔진 '힘센'(HiMSEN) 기반 발전설비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해당 계약은 6271억원 규모로 HD현대중공업이 수주한 발전용 엔진 계약 가운데 최대다.
HD현대의 이 같은 사업 확장은 북미를 중심으로 급증한 데이터센터 건설과 연동돼 있다. AI 산업 성장으로 미국 내 데이터센터 구축이 빠르게 늘어나며 기존 발전소와 송전망만으로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올해 예정된 미국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의 약 40%가 전력 인프라 부족으로 지연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같은 전력 인프라 부족이 심화되면서 데이터센터 사업자들은 자체 전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기존에는 ESS(에너지저장장치) 등 보조 전력원 확보에 집중했지만 최근에는 자체 발전 설비 구축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는 추세다. 특히 기존 발전원인 가스터빈은 높은 가격과 긴 납기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빨리 조달할 수 있는 엔진 기반 발전 설비가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양승윤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대형 가스터빈 업체들의 납기는 3~4년 정도가 걸리는데 비해 엔진사들은 2년 정도로 납기 속도 측면에서 우위가 있다"며 "가스터빈 업체들의 공급 병목이 지속된다는 가정 하에 육상 발전 엔진 수요도 지속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력 수급 불균형은 미국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지난해 485테라와트시(TWh)로 전년 대비 16.6% 증가했다. 같은 기간 세계 발전량 증가율은 2.8%에 그쳤다.
이 같은 흐름에 따라 국내 선박엔진 업계의 수혜 가능성도 제기된다. STX엔진은 데이터센터에 적용 가능한 육상용 발전엔진인 4행정(4-stroke engine) 엔진을 생산하고 있다. 한화엔진은 4행정 사업 확대를 위해 중속엔진 공장을 오는 7월 완공할 예정이다. HD현대마린엔진은 4행정 엔진 핵심 부품인 터보차저를 생산해 공급하고 있다.
백주호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선박 엔진 제조 역량을 보유한 업체들이 발전용 시장으로 사용처를 빠르게 확대할 수 있다"며 "미국 데이터센터향 엔진 추가 수주가 이어진다면 관련 회사들의 실적과도 연계되는 흐름을 보일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