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에 팔린 로봇 기업…경제안보 '뉴노멀' 알렸다

베를린(독일)=권다희 기자
2026.06.08 04:00

[산업전환 돌파구, 독일에서 찾다]<5-끝>산업의 새 공식 경제안보①위험완화 위한 다각화·적극적 투자유치

[편집자주] 인공지능(AI) 전환(AX)·녹색 전환(GX)으로 요약되는 산업 변환기이자 '경제안보'로 대표되는 지경학적 전략이 주목받는 시대다. 전통 제조업 강국인 독일은 어떻게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한국에 주는 시사점이 무엇인지 들여다봤다.

2017년 독일의 자랑이던 정밀 로봇기업 쿠카(KUKA)가 중국 가전업체 메이디그룹에 인수된 사건은 독일 정책당국의 인식이 바뀌는 분기점이 됐다. 자국의 핵심 기술기업을 외국 자본에 매각하는데 대한 위기의식이 확산되면서다. 이때부터 개방경제에 대한 낙관론이 저물고 경제안보 논리가 부상하는 방향으로 변화가 시작됐다.

외국 자본 투자 심사 늘린 독일

이는 외국 자본을 걸러내는 제도가 강화된데서 우선 확인된다. 독일 연방경제에너지부가 지난 1월 발표한 '독일의 투자심사: 수치와 사실'에 따르면 대외무역법(AWV)에 따른 독일 내 심사 건수는 2019년 106건에서 지난해 339건으로 늘었다.

이 심사는 외국 자본이 독일 기업의 의결권을 일정 비율 이상 인수하거나 독일 기업의 핵심 사업부 등을 인수하는 경우 대상이 된다. 실제 인수에 제동이 걸린 사례는 많지 않으나 제도적 관문을 깐깐하게 한 것만은 명확하다.

결국 팬데믹(감염병의 전세계적 유행)발 공급망 위기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며 이런 흐름은 새로운 정책 기조로 진화됐다. 글로벌 공급망이 더 이상 비용 효율성만의 영역이 아니라 국가의 회복탄력성에 핵심이 된다는 인식이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시장에 맡겨두면 된다'는 신조가 약화되고, 정부 주도 산업정책 수립과 경제안보 강화가 '뉴노멀'이 됐다.

희토류 中의존…다각화 '속도'

산업정책이 특정 분야에 대한 보조금·세제 혜택·연구개발 지원 등으로 나타났다면, 경제안보는 특정 국가에 대한 무역 의존도를 낮추고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완화) 전략에서 드러났다.

희토류와 주요 광물은 이 변화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영역이다. 유럽은 핵심 원자재 상당 부분을 외부에 의존하고 있고, 특히 일부 희토류 공급망에서는 중국 의존도가 높다. 독일 정부는 중국 의존도를 하루아침에 끊어낼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유럽의 다른 정부들과 협력해 대체 공급망을 만들기 위한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독일 정부의 원자재 펀드는 디리스킹이 구호가 아니라 산업정책과 경제안보 수단으로 전환된 대표적인 사례다. 독일은 자국 정책금융기관 KfW를 통해 독일과 유럽연합(EU) 생산 거점에 장기 공급을 보장할 수 있는 채굴·가공·재활용 프로젝트에 자금을 투입하고, 캐나다·호주·영국 등의 국가들과 핵심 광물 협력을 넓히고 있다. 독일·영국 공동성명에는 핵심 광물 수요를 함께 묶는 방안까지 포함됐다. 단일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신규 원자재 프로젝트의 초기 리스크를 정부가 금융과 외교로 낮춰주는 구조다.

'선 긋기' 대신 ' 믿을 수 있는' 국가와 협력↑

독일 정부의 접근이 일부 국가와의 '거리두기' 등 전면적인 디커플링(탈동조화)과 거리가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독일은 여전히 수출로 먹고사는 개방경제 국가다. 보호주의로 돌아서는 순간 혁신과 성장의 기반이 약해질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이 때문에 독일이 택한 해법은 취약한 고리에 안전장치를 두고 필요한 영역에서는 더 많은 국가와 협력망을 구축하는 균형 전략이다. 경제안보가 곧 고립주의를 뜻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이에 독일의 경제외교 대상은 전통적인 대서양 동맹을 넘어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인도 등의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인도·인도네시아·호주·멕시코 등이 단순한 수출 시장을 넘어 공급망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전략적 파트너로 부상했다.

다만 경제안보에는 비용도 따른다. 독일은 가장 효율적인 공급망이 가장 안전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과 팬데믹 공급망 충격을 거치며 확인했다. 하지만 기존 공급망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추가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안보를 강화하는 대가인 셈이다. 어디까지 이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느냐는 독일 정부와 기업을 포함해 전 세계 다수 국가가 직면한 과제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변화가 독일을 폐쇄적인 국가로 만들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독일은 이전보다 더 적극적인 투자 유치 국가로 변모하고 있다. 2010년대까지만 해도 독일은 EU의 중심이라는 지위, 러시아산 가스에 기반한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스 공급, 숙련 노동력 등의 강점을 바탕으로 해외 투자를 자연스럽게 끌어들일 수 있었다.

적극 투자 유치 나선 독일

그러나 이제는 독일 스스로 투자자를 찾아 나서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 경제안보 기조가 외국 자본을 무조건 배척하는 방향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필요한 투자와 협력은 더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진화되고 있다. 특히 반도체와 배터리, 방산·우주 등 전략 분야에서는 외국 기업과 투자자를 향해 더 넓게 문을 열고 있다.

올해 처음 개최되는 독일 투자유치 정상회의(Invest in Germany Summit 2026)가 대표적이다. 독일 정부는 오는 10월 베를린에서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가 전면에 나서는 이 회의를 열고 글로벌 투자자 유치전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베르사유궁에서 '프랑스를 선택하라(Choose France)'라는 이름의 정상회의를 통해 대규모 투자 약속을 끌어낸 방식에서 착안한 독일판 투자 세일즈 무대다. 독일은 5000억 유로 인프라·기후기금, 국방 지출 확대, 전력비 인하와 인허가 단축 등을 앞세워 '독일에 투자할 시간'이라는 메시지를 내세우고 있다.

독일 연방경제에너지부의 대외무역진흥부 책임자인 크리스티나 호이스너는 "적극적으로 투자자를 유치하고 여전히 좋은 투자처임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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