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설치 현장의 중대재해 위험을 95%까지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현대그룹 사옥에서 만난 배성준 현대엘리베이터 설치기술개발담당 상무(사진)는 고층용 모듈러 엘리베이터 '이노블록' 개발에 뛰어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기존 승강기 설치는 자재를 현장으로 반입한 뒤 작업자들이 승강로 안에서 작업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반면 모듈러 엘리베이터는 공장에서 주요 부품을 사전 조립한 뒤 현장에서는 최소한의 적층과 설치만 수행하는 공법이다.
배 상무는 "엘리베이터 설치 과정에서 발생한 중대재해 사고 유형을 50~60개 정도 분석했는데 대부분이 작업자 추락이나 중량물 낙하와 관련된 사고였다"며 "레일과 무거운 자재를 인력 중심으로 끌어올려 설치하다 보니 생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모듈러 방식은 작업자가 높은 곳에서 작업하는 공정이 줄어들어 사고 위험을 크게 낮춘다"고 소개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특히 '고층'에 집중했다. 저층용 모듈러 승강기 사례는 이미 일부 있었지만 20층이 넘는 고층 건물 적용은 사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배 상무는 "가장 어려웠던 건 고층 구조를 실제로 테스트할 현장이 없었다는 점"이라며 "㎝ 단위 오차를 허용하는 건축과 100분의 1㎜ 단위 정밀도를 요구하는 기계(승강기) 산업의 간극을 메우는 작업도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이노블록' 개발 이후에도 건설사 설득이라는 난관이 기다렸다. 이날 함께 만난 양종규 SCM전략담당 상무는 "건설 현장은 철저히 레퍼런스 중심 산업"이라며 "'다른 데서 먼저 해보고 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했다. 배 상무가 공법 개발 자체를 총괄했다면, 양 상무는 모듈러 공법을 실제 건설 현장에 적용하는 역할을 맡았다.
양 상무가 전면에 내세운 건 공기 단축 효과였다. 공장에서 상당 부분 조립을 마친 구조물을 크레인으로 승강로에 쌓은 뒤 최소한의 설치 작업만 진행하면 되는 만큼 기존 공법보다 설치 기간을 크게 줄일 수 있어서다. 그 결과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 4월 인천 송도 힐스테이트 센터파크 현장에서 27층 규모 아파트에 모듈러 공법으로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데 성공했다.
양 상무는 "보통 한 달 넘게 걸리던 설치 작업이 1주일도 안 돼 끝났다"며 "현장소장들이 설치 이후에는 오히려 모듈러 홍보대사처럼 바뀌었다"고 말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올해 하반기 25~30대 규모의 추가 적용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다만 비용 문제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무엇보다 완성된 직육면체 구조물을 그대로 운송하면 물류비 부담이 급격히 커지기 때문이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면(面) 단위로 분리 운송한 뒤 현장에서 다시 조립하는 이동식 작업장을 개발했다. 양 상무는 "건설 현장에서 엘리베이터를 위해 별도 공간을 내주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며 "공간 제약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이동식 조립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대엘리베이터의 다음 목표는 '점프 엘리베이터' 개발이다. 건물 골조가 올라가는 도중 엘리베이터를 먼저 운행시키는 방식이다. 배 상무는 "골조가 올라가는 중간부터 엘리베이터를 운행할 수 있다면 건설 효율은 지금보다 훨씬 커질 수 있다"며 "우리의 목표는 승강기 설치를 빠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건설 공정 자체를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