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재생에너지를 2030년 100기가와트(GW)로 늘리려면 결국 배전망에 태양광 발전시설이 접속돼야 합니다. 그런데 전력망 운영 역량이 없으면 이를 실현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전력망을 무작정 단기간에 많이 깔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최동구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교수는 지난달 25일 서울 강남구 소재 에이치에너지 서울 사무소에서 가진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재생에너지 확대의 관건이 발전설비 증설에만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태양광·풍력·에너지저장장치(ESS)는 물론 전기차 등 수요자원까지 곳곳에 흩어진 전력자원을 묶고, 제어할 수 있느냐가 앞으로 전력산업의 경쟁력이 된다는 진단이다.
그가 주목하는 수단 중 하나는 VPP(Virtual Power Plant·가상발전소)다. VPP는 태양광, 풍력, ESS, 각종 수요처 등 여러 곳에 분산된 소규모 전력 자원을 연결해 하나의 발전소처럼 운영하는 방식이다. 개별 자원은 규모가 작고 출력 변동성이 크지만, 이를 묶어 예측·제어하면 전력 공급이나 수요 조절에 활용할 수 있다.
최 교수는 산업공학을 전공한 에너지 시스템 모델링 연구자다. 전력공학이 발전소와 송전망 등 전력 시스템의 기술적·물리적 기반을 다루는 분야라면, 그는 전력시장을 어떻게 설계해야 에너지 시스템 전체가 효율적으로 작동하는지를 연구해 왔다.
2010년대 초 미국 조지아공대 박사과정 후반부에 있던 그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력시장 변화 속에서 VPP가 본격적인 사업 모델로 부상할 가능성에 주목하며 이 분야 연구에 착수했다. 이후 2016년 포스텍에 교수로 부임한 뒤 2018년 설립된 국내 VPP 기업 H에너지와의 산학 연계 등을 통해 VPP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이어갔다.
최 교수는 국내 VPP 사업이 이제 막 자리 잡아가려 하는 단계라고 본다. 해외와 비교하면 한국 시장은 아직 제도적 기반이 충분히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평가다. 유럽과 미국 여러 주에서는 VPP가 이미 보조 서비스 시장, 수요관리 시장, 전력 소매시장 등 다양한 영역에 참여하며 수익을 낸다.
인공지능(AI)에 기반해 데이터 분석력이 더 정교해지며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도 확대됐다. 이렇게 성장한 기업으로 영국 옥토퍼스에너지, 2021년 쉘에 인수된 독일 넥스트 크라프트베르케 등이 있다.
반면 한국은 아시아권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관련 사업자가 등장했음에도 이 분야 시장 성장이 충분히 실현되지 못했다. 전력판매 대부분과 송배전이 민간에 닫혀 있어 전력시장 개방도가 낮고 재생에너지 보급 속도가 다른 지역 대비 더딘 게 주요한 원인이다.
최 교수는 "국내에서는 아직 VPP가 참여할 수 있는 시장이 제한적이라 재생에너지 등의 분산자원이 제공할 수 있는 유연성과 계통 기여도가 충분히 시장 가치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국내에서 개선이 필요한 부분으로 그는 '데이터 분석의 가치를 인정하는 시장 구조'를 꼽았다. 최근 국내에서도 제주 재생에너지 입찰제도, 호남지역 재생에너지 준중앙 급전제도 등이 도입됐다. 그러나 기업들이 정교한 예측·운영 역량에 투자할 만큼 보상이 충분하지 않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최 교수는 "전력가격이나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수익과 비교할 때 발전량 예측제도의 인센티브로 얻는 추가 수익은 비중이 상당히 적다"며 "사업자 입장에서는 정교한 예측 역량을 키워 추가로 얻을 수 있는 보상이 크지 않다"고 했다.
제주 재생에너지 입찰제도 등 일부 제도의 경우 시장 구조가 지나치게 복잡해졌다고도 평가했다. 그는 "처음에는 단순하게 시작했더라도 여러 이해관계자의 의견이 붙으면서 시장 구조가 매우 복잡해졌다"며 "연구자들이 운영 규칙을 따라가며 공부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인데, 실제 사업자들이 제도 설계 의도에 맞춰 행동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해외 학계 인사들로부터 "한국 시장 구조는 왜 이렇게 복잡하냐"는 질문도 종종 받는다고 했다. 그는 "시장 규칙에 써 있다고 해서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해하기 너무 어려운 구조라면 과연 투명한 시장이라고 볼 수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했다.
그가 제시한 방향은 명료하다. 시장 규칙은 이해하기 쉬워야 하고, 보상과 책임이 명확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해외 시장은 구조가 비교적 단순하다"며 "잘 예측하고 운영했을 때 더 보상하는 방식이 확실한 신호가 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이 문제가 더 중요한 이유도 있다. 국내 전력망은 물리적으로 대륙과 연결돼 있지 않아 사실상 섬처럼 운영된다. 유럽처럼 국가 간 전력 거래를 통해 재생에너지 변동성을 완충하기 어렵다. 재생에너지와 같은 분산자원이 늘어날수록 이를 효율적으로 묶고 운영하는 데이터 분석과 알고리즘 역량이 중요해진다.
최 교수는 "데이터 분석 역량 같은 소프트웨어가 전력망 등의 하드웨어 인프라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 인프라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핵심 경쟁력이 되고 있다"고 했다.
또 그는 "에너지 전환은 발전원의 변화뿐 아니라 전기를 생산하고 소비하며 거래하는 방식 자체가 바뀌는 과정"이라며 "앞으로는 에너지 데이터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에너지 자산을 얼마나 지능적으로 운영하느냐가 중요한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