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컨테이너선 발주 시장의 중심이 초대형선에서 중소형선으로 이동하고 있다. 선사들이 초대형선을 모든 항만에 직접 보내는 대신 소수의 대형 항만에만 기항시키고, 거기서 화물을 옮겨 실어 주변 항만으로 나르는 환적 거점 중심으로 노선을 재편하면서다. HMM이 최근 중장기 전략에서 전체 선복량(선박의 적재능력) 목표를 줄이면서도 선박 수를 대폭 늘린 것도 이같은 시장 재편 흐름과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28일 프랑스 해운분석기관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이후 새로 발주된 컨테이너선의 74%가 65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 미만 중소형선이었다. 직전 1년간 이 비중이 30%에도 못 미쳤던 것과 비교하면 발주 흐름이 1년 새 완전히 뒤집힌 셈이다.
선형별로는 원양 대형선과 지역 항만을 잇는 1200TEU급 피더선(근거리 항해용 중소형 선박)과 1800TEU급 선박 발주가 두드러졌다. 1800TEU급은 지난 1년간 150척 가까이 발주됐고 3100TEU 안팎 선박도 100척 넘게 계약됐다. 반면 원양 항로에 투입되는 초대형선 발주는 자취를 감췄다. 올해 2분기에는 1만6000TEU를 넘는 대형선 발주가 한 척도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2024년 초 이후 처음이다.
중소형선으로 발주가 몰리는 것은 그동안 이 선형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사들이 초대형선 확보 경쟁에 집중하는 사이 중소형선 신조는 정체됐고 이런 노선 재편으로 수요는 오히려 늘었다. 여기에 선대 노후화가 겹쳤다. 지난해 기준 글로벌 컨테이너선의 4분의 1이 선령 20년을 넘겼고 노후선은 중소형 선형에 집중돼 있다. 영국 해운분석기관 MSI는 올해 상반기 가용 피더선 선대의 실질 증가가 없어 피더선 용선료가 당분간 높은 수준으로 유지될 것으로 전망했다.
선사들이 환적 중심으로 노선을 바꾼 배경에는 운항 정시성 문제가 있다. 코로나19와 홍해 사태를 거치며 글로벌 컨테이너선 정시 운항률이 50%대까지 떨어지자 기항지를 줄여 지연이 연쇄적으로 번지는 것을 막으려 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대표선사인 머스크와 하팍로이드가 지난해 출범시킨 해운동맹 제미니가 소수 대형 항만만 기항하는 체제로 정시 운항률을 90% 이상으로 끌어올린게 대표 사례다.
HMM의 전략 수정도 같은 맥락이다. HMM은 지난 24일 2030년 말까지 약 29조원을 투자하는 중장기 전략을 공시했다. 기존 전략 대비 투자 규모를 8조2000억원 늘리면서 컨테이너선 목표는 기존 155만TEU·130척에서 147만TEU·166척으로 변경했다. 전체 선복량 목표는 5.2% 줄었지만 선박 수는 36척으로 27.7% 늘었다. 초대형선 중심의 선복 확대에만 치중하기 보다 허브 터미널과 피더선도 함께 확보해 원양·근해 항로를 잇는 네트워크를 강화하겠다는 목표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대형선 발주잔량은 공급 과잉 우려가 나올만큼 많지만 중소형선은 여전히 공급이 빠듯하다"며 "부족한 중소형선을 채우려는 발주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