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년 전 40%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던 막장 드라마의 최고봉 '아내의 유혹'. 복수를 다짐한 주인공이 얼굴에 점 하나 찍고 다른 사람처럼 등장하는 모습은 큰 화제가 됐다. 시간이 흘러 전체 줄거리는 가물가물 한데도 점을 찍고 재등장했던 황당한 설정만큼은 좀처럼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2015년 재계를 강타한 '롯데그룹 왕자의 난'이 막장 드라마 버금가는 흥미와 관심을 유발하고 있다. 지난해 말 갈등 조짐이 포착됐던 롯데그룹 후계구도는 올 7월 신격호 총괄회장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SDJ코퍼레이션 대표)의 공세로 구체화 됐다.
신 총괄회장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한국은 물론 일본 롯데 계열사를 사실상 장악하며 일단락되는 듯했던 경영권 분쟁은 2개월 만에 다시 점화됐다. 포기하고 물러나는 듯 했던 신 전 부회장이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동생인 신 회장을 상대로 경영권 소송을 제기했다.
신 전 부회장은 이 같은 사실을 공개하는 지난 8일 기자회견장에 부인뿐 아니라 변호사, 금융전문가 등 제3의 인물들과 함께 나타나 새로운 국면이 시작됐음을 알렸다. 드라마 속 주인공이 얼굴에 점을 찍으며 복수 의지를 다졌다면, 신 전 부회장은 한국 물정에 어두운 자신을 도울 아군(?)을 소개하며 대대적인 반격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후 신 전 부회장의 행보는 숨이 가쁠 정도다. 지난 14일엔 롯데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일본 광윤사 대표이사에 취임하고 신 회장을 등기이사에서 해임했다. 16일에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4층 신 총괄회장 집무실을 언론에 최초로 공개하며 아버지가 장남인 자신을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식화했다. "(신동빈은) 경영능력이 없다"는 비난 수위도 점점 높이고 있다.
신 회장을 지지하는 롯데그룹은 신 전 부회장의 불필요한 논란과 방해로 지난 8월 대국민사과 당시 약속한 내년 2월 호텔롯데 상장, 연내 순환출자 80% 해소 등 지배구조 개선작업이 진통을 겪고 있다고 주장했다.
연 매출 83조원, 재계 5위 그룹의 경영권은 누구라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권리다. 그러나 주주나 임직원, 거래처, 소비자는 안중에도 없이 오너 일가의 집안싸움을 생중계하는 것은 롯데의 기업 이미지만 더 망칠 뿐이다.
한국 롯데를 물려받고 싶은 신 전 부회장은 경영인으로서 임직원들에게 얼마나 지지받고 있는지를, 신 회장은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아버지·형과 얼마나 많은 의견을 나눴는지를 다시 돌이켜봐야 한다.
며칠 전 기자들과 만나 '장남 후계'를 강조하다가 돌연 "나는 아직 10년, 20년 일을 할 생각"이라고 밝힌 올해로 93세인 신 총괄회장의 당황한 멘트가 계속 머릿 속을 맴돈다.
롯데 일가는 더 늦기 전에 회사를 망가뜨리는 집안싸움을 중단해야 한다. 막장드라마에 질리면 채널이 돌아가듯, 롯데를 키워준 소비자들이 영영 등을 돌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