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배불리 먹고 숟가락을 내려놓는다. 그래도 맛있는 디저트는 포기할 수 없다. 예쁜 디저트를 보는 순간 흐르는 군침이 위 안에 여유공간을 만든다. "밥 먹는 배, 디저트 먹는 배 따로 있다"는 수많은 2030 여성들의 외침은 디저트를 위한 변(辨)이다.
여성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디저트 시장이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7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국내 디저트 시장은 2013년 3000억원에서 2015년 1조5000억원으로 불과 2년 만에 5배나 성장했다. 업계는 올해 시장규모를 지난해보다 45% 이상 성장한 2조2000억원으로 전망했다. 연평균 성장률이 94%에 달한다. 제과·제빵 등 전통적인 간식 시장이 수년째 제자리 걸음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괄목할만한 성장세다.
◇'설탕'이 디저트 촉매재…韓, 1972년 '샤니'가 효시='디저트'의 어원은 '테이블을 치우다, 정돈하다'는 뜻의 프랑스어인 'Desservir(데세르비)'다. 식사 마지막 단계에서 먹는 음식으로 전체 음식의 만족도를 결정짓는 역할을 한다는 의미가 단어에 내포돼 있다. 메인 메뉴가 실망스럽더라도 디저트가 훌륭하면 어느 정도 만회된다. 밥보다 비싼 디저트 가격이 정당화되는 이유다.
디저트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시작됐다고 전해진다. 소크라테스를 비롯해 철학자와 시인들이 모여 향연을 열고 식사를 하면서 식사 후 치즈와 말린 무화과를 즐긴 것이 시초다.
본격적인 디저트 문화가 개화한 것은 '마법의 가루'로 불리던 설탕이 산업혁명을 계기로 보급되면서부터다. 현대적 디저트 문화는 요리를 순서대로 내놓는 러시아식 식단이 유럽에 퍼진 19세기부터 자리 잡았다. 오늘날 우리가 대표 디저트로 여기는 케이크, 푸딩, 에끌레어 등이 이때 등장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홍콩, 싱가포르를 중심으로 디저트 문화가 유입됐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문물이 들어오면서 함께 도입된 디저트에 특유의 장인정신을 발휘해 아시아 최고의 디저트 강국이 됐다. 홍콩, 싱가포르는 영국 식민지 시절 '애프터눈티(afternoon tea)' 등 다양한 디저트 문화가 자리 잡았다.
한국식 디저트로는 떡이나 한과, 약과 등이 꼽힌다. 그러나 이들은 간식 성격이 강했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극한의 빈곤을 느꼈던 상황이어서 디저트 개념 자체가 없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분위기가 변화한 것은 1972년 케이크 전문회사 '샤니'가 컵케이크, 마들렌, 슈크림케이크 등 고급 양과자 30여 종을 선보이면서부터다. 디저트의 효시인 셈이다. 그 후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거쳐 국민 소득이 증가하고 해외여행 자유화, 조기유학 붐 등이 불면서 디저트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미식연구가들은 1990년대 프랜차이즈 빵집의 등장이 초기 디저트 문화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파리바게뜨는 1988년 광화문에, 뚜레쥬르는 1997년 구리에 첫 매장을 열었다. 국내 최초로 매장에서 빵을 바로 구워내는 '베이크오프' 방식을 도입해 베이커리 디저트 시장 성장을 주도했다.
2000년대부터는 커피문화 확산이 디저트 시장 성장을 이끌었다. 커피전문점이 급증하면서 커피에 조각케이크를 곁들이는 디저트 문화가 발달했다. 이 시기 식품기업들도 디저트를 하나의 사업영역으로 인식하게 됐다. CJ제일제당이 2000년 론칭한 '쁘띠첼'은 국내 최초의 가공 디저트 브랜드다.
◇'귀한 몸' 된 디저트…백화점·커피전문점도 앞다퉈 유치=디저트 시장은 최근 밀레니얼 세대(1980~2000년 출생)가 주 소비층으로 떠오르면서 황금기를 맞고 있다. 이들은 해외여행 경험이 많고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자신의 소비를 드러내는 '과시욕'이 있다.
알록달록 예쁘고 값비싼 디저트는 더 높은 수준의 삶을 꿈꾸는 욕망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최고급, 희귀 디저트일수록 인기다. 신사동 가로수길, 이태원 경리단길 등 핫플레이스는 물론, 트렌드 변화에 민감한 백화점도 경쟁적으로 해외 명물 디저트를 유치하고 있다. 인기 디저트 유치는 백화점 전체 매출에 영향을 미치는 분수효과로 이어진다.
롯데백화점은 지난해 말 본점 식품관에 디저트존을 꾸미면서 디저트 매장 수를 21개에서 38개로 늘리고, 면적은 20% 이상 확장했다. 프랑스 프리미엄 디저트 브랜드 '위고에빅토르'와 일본 치즈타르트 전문브랜드 '베이크'도 국내 최초로 입점시켰다. 이에 뒤질세라 현대백화점은 뉴욕 컵케이크 '매그놀리아'와 대만의 '락카스테라'를, 신세계백화점은 초콜릿계의 에르메스격인 '라메종뒤쇼콜라'와 대만 '펑리수'를 국내 최초로 유치했다. 덕분에 백화점 디저트 매출은 매년 두 자릿수 성장세다.
커피전문점들도 디저트 카페로 변신하며 매출 증대를 꾀하고 있다. '케이크가 맛있는 커피숍'인 CJ푸드빌의 투썸플레이스와 '프레즐'로 유명한 탐앤탐스, SPC가 운영하는 파스쿠찌 등 대표 디저트 카페의 경우 디저트 매출이 전체의 약 30%를 차지한다.
한상린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경기가 침체될 수록 답답함을 해소하고 작은 즐거움을 누리려는 이들로 디저트 매출이 지속 성장할 것"이라며 "디저트 자체 매출은 크지만 고객유인 효과를 발휘해 유통업계나 식품업계 전반에 매출 돌파구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