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 간 대형마트에는 전통시장과 소상공인을 벼랑 끝으로 내몬다는 꼬리표가 따라 붙었다. 대형마트를 옥죌 수록 전통시장이 살아날 것이란 기대감에 영업 규제는 강화됐다. 매달 하루 내지 이틀 동안 문을 닫아야 하는 의무휴업과 신규 출점제한은 가장 대표적인 규제로 꼽힌다.
대형마트 성장과 전통시장·소상공인의 생존권은 반비례한다는 논리가 흔들리고 있다. 오프라인 유통산업 전반이 위기를 맞으면서다. 대형마트마저 규제에 치이고 시장변화에 흔들리며 실적이 곤두박질치고, 점포 줄이기에 나섰다. 유통시장은 그야말로 '악당 없는 비극'인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는 비단 한국 만의 문제일까. 주요 선진국들도 의무휴업 등 대형마트 규제의 필요성과 효과에 대한 논쟁으로 홍역을 치렀다. 20~30년에 걸친 정책의 결과는 나라마다 다르다. 프랑스와 일본은 규제에서 벗어나 시장 활성화를 꾀한 반면, 대만은 유통산업이 고사하는 결과를 맞이했다.
프랑스와 일본의 과거 유통산업 규제는 한국과 닮은 측면이 많다. 한국경제연구원의 '프랑스·일본 유통산업 규제 변화 추세와 시사점'에 따르면 프랑스는 1973년, 1996년 제정한 '로와이에법', '라파랭법'을 통해 대규모 점포 출점규제를 시행했다. 일본은 1973년 '대규모 소매점포에 있어서 소매업의 사업활동의 조정에 관한 법률(대점법)'을 통해 점포면적부터 폐점시간까지 규제했다. 소형 유통업체를 보호한다는 이유에서다.
엄격한 규제 아래서 두 나라의 대형마트나 SSM(기업형 슈퍼마켓) 의무적으로 문을 닫아야 하는 날이 있었다. 프랑스의 경우 노동자 보호와 가톨릭 국가 전통에 따라 일요일 영업을 제한했다. 일본은 SSM이 지켜야 할 연간 휴업일수가 44일이나 됐다. 국내 대형마트 의무휴업과 비슷한 규제다.
프랑스와 일본의 유통산업 규제는 2000년대 들어 변화하기 시작했다. 지나친 규제로 자유로운 영업과 경쟁이 제한돼 시장이 위축되고 소비자 편익도 줄어들고 있단 비판이 거세졌다. 소상공인과 전통시장의 경쟁력을 올리긴 커녕 대형마트 규제에만 힘을 쏟다보니 부작용이 크단 지적이었다.
이에 일본은 2000년 대점법을 폐지하고 '대규모 소매점포 입지법(대점입지법)'을 제정, 영업시간과 연간 휴일 일수를 규제하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프랑스는 2008년 '경제현대화'법을 도입해 기존 출점 규제 대상 규모를 300㎡에서 1000㎡로 바꾸는 등 규제를 완화했다.
프랑스는 경제활성화를 위해 전통에 따라 엄격하게 제한하던 야간·일요일 영업도 허용했다. 2015년 일명 마크롱 법으로 불리는 '성장, 활동 및 경제기회 균등을 위한 법'을 통해 규제를 크게 완화했다.
이에 따라 2017년부터 프랑스 파리의 샹젤리제거리 등 12개 국제관광지구로 지정된 지역의 백화점과 상점들은 1년 내내 일요일에 문을 열 수 있게 됐다. 칸과 니스 등 지역 관광도시도 매일 자정까지 야간 영업이 허용된다. 골목상권의 붕괴를 막기 위해 억지로 규제를 씌우기 보단 대형마트부터 소형 상점까지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도록 방향을 바꾼 것이다.
반면 대만은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졌다. 대만은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형마트 억제책을 유지했다. 결국 대만 현지 최다점포를 갖고 있던 트러스트마트가 수익성 악화로 2006년 월마트에 매각됐다.
이 자리는 고스란히 까르푸와 코스트코 등 외국계 유통 대기업이 가져갔다. 정작 '야시장'이란 관광콘텐츠로 성공한 대만 전통시장은 대형마트 규제가 아닌 자체적인 경쟁력을 앞세워 성장했다. 유통산업 규제가 엉뚱하게 자국 대형마트만 고사시키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기환 한경연 부연구위원은 "배달과 온라인 주문 예약이 더욱 보편화되면 상점의 영업시간과 거리적 접근성은 이전만큼 소비자에게 중요하지 않을 것"이라며 "유통산업 구조 변화를 막기 어려우며 이를 규제를 통해 막는 것은 규제 우회를 만들어 결국 부작용만 초래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