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살리자는 취지에서 도입한 대형마트·기업형슈퍼마켓(SSM)에 대한 강도높은 규제의 틈새를 비집고 식자재마트가 골목상권의 새로운 포식자로 떠올랐다. 전통시장 상인들이나 중소 슈퍼마켓 사업자들과 갈등을 빚는 일이 생겨나는가 하면 업황 부진으로 문을 닫는 대형마트 자리에 식자재마트가 진입하며 대형마트와 SSM 등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성장하면서다. 식당, 음식점 등에 식자재 납품하며 운영됐던 식자재마트는 규제로 대형마트 등이 월 2회 문을 닫는 틈을 타 일반 소비자들의 발길을 붙잡으며 중견기업 수준으로 성장했다. 지난 10년간의 유통 규제 하에서 살아난 것은 전통시장도, 영세 소상공인도 아닌 식자재마트뿐 이었다.
14일 관련 업계와 산업통상자원부의 주요 유통업체 매출 동향 자료 등에 따르면 지난해 오프라인 유통시장에서 대형마트와 SSM 매출은 감소한 반면 대형 식자재마트는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대형마트와 SSM은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른 규제에 더해 코로나19(COVID-19)에 따른 외출 자제, 다중이용시설 기피까지 겹치며 각각 전년비 3.0%, 3.8% 매출이 줄었다. 유통산업발전법은 전통시장 반경 1㎞ 이내를 보호구역으로 정해 3000㎡ 규모 이상의 대형마트와 대기업이 운영하는 상점은 추가 출점할 수 없도록 하고, 이미 있는 점포는 '월 2회 휴무'와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금지' 등의 규제를 받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3000㎡ 이하 면적에 대기업이 아닌 사업자가 운영하는 식자재마트는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는다. 식자재마트가 1년 365일, 24시간 영업하는 이유다. 코로나19 타격도 비껴갔다. 중소상공인이 운영하는 점포로 분류돼 긴급재난지원금 등 사용처로 선정돼 수혜를 입은 덕이다.
국내 최대 식자재마트 세계로마트는 지난해 3977억원 매출액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2019년 매출(3328억원) 대비 약 20% 늘었다. 국내 최대 식자재마트 중 하나인 장보고식자재마트 역시 2019년 매출 3164억원에서 지난해 3770억원으로 약 17% 성장했다. 몸집도 꾸준히 키웠다.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유통학회에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식자재마트 점포 수는 최근 5년(2014~19년) 간 74% 증가했다. 전체 시장규모는 약 9조7000억원으로 추산된다.
대형마트와 유사한 규모의 점포도 우후죽순처럼 늘었다. 인천 미추홀구 세계로마트, 김포시 양촌읍 세계로마트, 수원시 권선구 마트킹 등은 대형마트 수준의 규모를 자랑하지만, 3000㎡에 살짝 미치지 못하는 규모로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는다. 세계로마트 학익점의 경우 3000㎡ 규모가 넘지만 매장을 1000㎡ 단위로 쪼개 운영하면서 규제를 피하기도 했다.
자본력도 더 이상 소상공인 수준이라고 볼 수 없단 지적이 나온다. 대형마트가 수익성 악화나 임대료 부담 등으로 버티지 못하고 나간 자리를 식자재마트가 채우는 일이 늘어나면서다. 앞서 2018년 김해시 삼방동에 위치해있던 홈플러스 동김해점이 폐점한 뒤 이 자리를 식자재마트인 '일등마트'가 채웠고, 임대료가 비싸 여러차례 유찰됐던 롯데마트 구리점은 지난 6월 식자재마트인 '엘마트'가 연 임대료 33억원이 임대권을 낙찰받아 새로 문을 열었다.
상황이 이러하자 식자재마트에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임원배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회장은 "최근 10년간 전국에 (소형) 슈퍼마켓 5만여곳이 사라져 골목상권이 전부 무너졌다"며 "식자재마트에도 의무휴업 확대와 허가제 도입 등이 시급하다"고 했다. 연합회는 현행 유통산업발전법 규제대상 면적을 3000㎡에서 1000㎡로 하향 조정하고, 식자재마트에 대해서도 의무휴업 등 대형마트 수준의 규제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권에서도 식자재마트 규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지난 10월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이 "식자재마트 때문에 소상공인의 피해가 막심하다"며 "산업부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하자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식자재마트가 상권 내에서 중소기업의 사업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했다. 이에 국회에도 식자재마트도 출점규제와 영업규제에 적용하는 내용의 유통산업발전법 일부 개정안 등이 발의돼 있다.
반면 규제에 회의적인 반응도 나온다. 식자재마트의 경우 전국단위로 운영되는 없고 빠르게 성장했지만 아직 대부분의 경우 중견, 중소기업 규모에 그치고 있어서다. 특히 규제를 확대하기 보다는 그동안의 유통 규제의 효과와 영향을 제대로 측정해 원점에서 재검토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한 규제 결과 식자재마트만 기형적으로 성장했다고 할 수 있다"며 "그렇다고 식자재마트에도 규제를 확대해 한다면 또다른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어 전체 유통규제에 대해 다시 고민해야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