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열 펄펄 나도 약 살 곳이 없다...넓어진 '무약촌', 지방은 비상

김민우 기자, 남원(전북)=하수민 기자
2025.12.22 08:00

[MT리포트]무약촌 고발 그 후 (上)

[편집자주] 머니투데이가 지난해 창간기획으로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업소와 공공심야약국 모두가 없는 지역의 실태를 고발한지 1년반이 지났지만 눈에 띄는 변화를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상비약 품목 확대와 판매점 24시간 규제 완화를 대안으로 제시했지만, 정부는 외면했고 국회는 손을 놨다. 그사이 제도는 그대로인데 편의점 업계 구조조정과 불황이 겹치며 상비약 판매점은 오히려 줄었다. 정책 공백 속에서 더 깊어진 지역간 약 접근성 격차를 데이터로 확인하고 그 책임을 따져봤다.

[단독]1년새 1284곳 사라진 상비약 판매점..무약촌 더 넓어진 대한민국

안전상비약 증감률 지도/그래픽=이지혜

안전상비의약품(이하 상비약)을 살 수 있는 편의점 등 판매점이 1년새 1200곳 넘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와 국회가 약 접근성 개선 논의를 사실상 멈춘 사이, 국민들의 '집 앞 상비약' 체감도는 더 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머니투데이가 행정안전부가 관리하는 2025년 6월 기준 상비약 판매업소 현황을 2024년 5월 기준 자료와 비교해 전수 분석한 결과, 1년새 1284곳이 순감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5월 기준 존재했던 판매점 중 6036곳이 같은 기간 목록에서 사라졌고, 새로 등록된 판매점은 4752곳에 그쳤다. 결론적으로 폐업했거나 24시간 영업을 포기하면서 상비약 판매를 하지 못하게 된 점포수가 지난해보다 1284곳 줄었다는 얘기다.

상비약 판매업소는 약국이 문을 닫는 심야·공휴일에도 해열진통제나 감기약 등을 구할 수 있도록 마련된 것이다. 하지만 편의점 업황 부진과 규제 개선 논의가 진전되지 못하면서 상비약 판매점 수는 줄어들고 있다.

특히 지방의 감소세는 뚜렷했다. 실제로 상비약 판매점 감소율 상위 20곳 중 15곳이 군 단위 지역으로 나타났다. 상비약 판매점이 적은 지역에서는 1~2곳의 판매 중단이 곧 '약을 살 수 있는 마지막 선택지의 소멸'로 이어지고 있다.

수도권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경기 일부 외곽 시·군에서도 상비약 판매점이 두 자릿수 감소율을 보였다. 하지만 대체 수단이 상대적으로 다양한 도시와 달리 지방의 체감도는 훨씬 크다. 이미 약국과 공공심야약국이 모두 없는 '무약촌' 문제가 부각된 상황에서, 상비약 판매점마저 줄어들고 있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상비약 품목 확대나 24시간 판매 규제 완화 논의가 수년째 중단된 상황"이라며 "수익성은 낮고 행정 부담은 커 점주 입장에서는 철수 유인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약 찾아 3시간 헤맨 할머니…1년 반 전찾은 '무약촌' 사람이 떠났다[르포]

전남 남원시 덕과면에 거주하는 오정자씨가 보관하고 있던 일부 상비약 사용기한이 지난 모습. /사진=하수민기자

김복순 할머니(85세)는 '무약촌'인 전북 남원시 덕과면에 더 이상 살지 않고 있다. 지난해 5월에 만난 김 할머니는 약을 사기 위해 버스에 몸을 실었다. 집에서 약국까지 왕복하는데만 최소 2~3시간이 걸렸다. 고령의 몸으로 건강을 돌보기 어려웠던 김 할머니는 결국 도회지의 자식들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지난해 6월 무약촌 실태를 고발한 뒤 1년 반 만인 지난 16일 다시 찾은 남원시 덕과면과 인근 보절면의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악화했다. 남원시 덕과면은 원래부터 안전상비의약품(이하 상비약) 판매 편의점과 공공심야약국이 모두 없는 '무약촌'인데, 인근에 있던 상비약 판매 편의점들마저 판매를 중단한 것이다. 남원시에 있던 상비약 판매 편의점 44곳 가운데 2곳이 새로 문을 열었지만 7곳이 문을 닫아 결과적으로 5곳(11.4%)이 줄었다.

덕과면에 혼자 거주 중인 오정자 할머니(80대)의 집에는 유통기한이 지난 약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약국이 멀어 필요할 때 바로 먹을 수 있도록 소화제와 해열제, 지사제 등을 미리 사다 둔 탓이다. 오 할머니는 "급하게 필요할 때 살 곳이 없기 때문에 한 번 읍내에 나갈 때 여러 개를 사 온다"며 "어디에 뒀는지 헷갈릴 때도 있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했다. 인근 보절면도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한 주민은 "어르신들에게는 상비약이 비상용이 아니라 생활용품에 가깝다"며 "떨어지기 전에 미리 사다 두는 식으로 몸을 관리한다"고 전했다.

이 같은 현상은 특정 마을의 문제가 아니다. 상비약 판매점 감소세는 지방과 수도권을 가리지 않았다. 본지 분석 결과 전체 226개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144개 시·군·구(63.7%)에서 상비약 판매점이 줄었다. 판매점이 늘어난 지자체는 49개 시·군·구(20.4%)뿐이었다. 33개 시·군·구(14.6%)는 변함이 없었다.

감소율이 가장 큰 지역은 대부분 군 단위 지방에 집중됐다. 전국 82개 군 가운데 35개 군(42.7%)에서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점이 줄었다. 군 지역의 40% 이상이 감소 국면에 들어선 셈이다.

안전상비약 판매점 감소율 Top20/그래픽=이지혜

전북 장수군은 상비약 판매 편의점이 2024년 9곳에서 1년 만에 4곳으로 줄어 감소율이 55.6%에 달했다. 경북 영양군은 3곳 가운데 1곳이 판매를 중단해 남은 군 내 상비약 판매점은 단 2곳뿐이다. 강원 인제군 역시 지난해 35곳이었던 판매업소 중 10곳(28.6%)이 줄었다. 숫자만 보면 '몇 곳'에 불과하지만,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는 마지막 선택지가 사라진 것과 다름없는 변화다. 약을 사기 위해 이동해야 하는 거리는 도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서울과 수도권도 예외는 없었다. 판매 중단 점포 수만 따져보면 서울에서만 377곳이 순감했고 경기도에서도 1년 새 판매점포 수가 261곳이나 줄었다. 서울이나 수도권에서는 상비약 판매 편의점이 1~2곳 줄어도 인근 지역으로 이동해 구입이 가능하다. 하지만 경기 가평군처럼 도시 외곽에 농촌지역이 혼재된 곳도 1년 새 상비약 판매 편의점이 20% 이상 급감했다. 도시 외곽에 농촌과 혼재된 지역은 한곳의 감소가 삶의 질과 직결된다.

전국 시군구 안전상비약 판매점 증감 현황/그래픽=이지혜

편의점업계의 성장 정체와 수익성 악화로 지방 점포를 중심으로 폐업과 구조조정이 이어지고 있는데다 남아 있는 점포들도 인건비 부담 등으로 24시간 운영을 포기하는 사례가 늘면서 발생한 현상으로 분석된다. 현행 제도상 상비약은 24시간 운영 편의점에서만 판매할 수 있어, 편의점이 있어도 약은 팔 수 없는 지역이 늘어나는 역설이 발생하고 있다. 게다가 편의점업계의 업황이 언제 회복 국면에 접어들지 알 수 없어 앞으로 상황은 더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주열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상비약 품목을 현행 13개(단종품목 포함)에서 더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한 뒤 "현재 상비약을 24시간 운영 편의점에서만 판매하게 돼있는데 농어촌 지역은 지금 그게 가능하지 않다"며 "24시간이 아닌 편의점에서도 상비약을 팔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전기사 : [2024년 머니투데이 창간기획] 전국 16%가 무약촌 시리즈

①의사만 부족한게 아니다…전국 16%는 약 살 곳 없는 '무약촌'

②[르포]"내 나이 85세…약 사러 한 시간 버스 타고 갑니다"

③전국 최고령 동네 10곳, 한밤중 약 살데 없는 '무약촌

④[르포]1시간 만에 타이레놀 700정을 샀다...상비약 '복약지도' 무색

⑤안전상비약 확대 반대하는 약사회, 왜?

⑥'13개→11개' 거꾸로 가는 안전상비의약품, 못 늘리나 안 늘리나

⑦ '24시간 운영' 제한만 풀어도 1.2만개 편의점에 '약'들어간다

⑧[르포]"30년째 문제없는데"…한국 편의점 상비약, 일본 1%에도 못미쳐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