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신의 와인Pick!] 이럴 때 이 와인 어때?

로피시엘=박경배 기자
2026.04.11 12:57

화창한 날에 진달래처럼 상큼하고 생동감 있는 기운이 필요할 때
그리스 로디티스 바리크(Roditis Barrique)내추럴 와인

/사진제공=필자

쏟아지는 봄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산길을 오른다. 턱 끝까지 가파른 언덕을 지나 숨이 차오르고 두 다리가 뻐근해 져 와도 기어이 한 걸음 더 발을 내 딛고야 마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이맘때면 빨간 볼처럼 산등성이를 수줍게 물들이는 진달래를 마주하기 위해서다.

산과 들, 푸른 바다가 내 유년시절을 늘 너그럽게 품어 주었던 나의 고향. 그 생명력 넘치는 자연에서 나고 자란 나는 봄에 활짝 핀 꽃과 식물을 마주하면 늘 눈보다 코와 입이 먼저 반응하곤 했다. 앙증맞은 꽃망울에 코를 대고 그윽한 향에 취해보고, 연한 꽃잎을 살며시 입안에 머금어 혀끝으로 번지는 자연의 풍미를 탐닉하는 것은 결코 놓칠 수 없는 내 유년의 기쁨이었다.

메마른 나뭇가지를 뚫고 나온 이른 봄, 척박한 겨울을 견뎌낸 대지가 빚어낸 봄의 기운 자체를 온전히 음미하는 경험이었다. 진달래가 품은 그 깊고도 기품 있는 여운을 온몸으로 깨닫는 순간, 봄 산을 오르는 발걸음은 다시금 가벼워진다.

매년 겨울의 혹독함 속에서도 살아남고 그 끝에서 자신만의 색으로 꽃을 피우는 그 모습은 도멘 리가스의 로디티스 바리크도 마찬가지다. 진달래가 산에서 봄을 기다렸 듯이, 오크통 안에서 숨 쉬는 숙성의 시간은, 마치 우리가 세월을 거쳐 성숙해지는 과정과도 닮아있다. 그 깊이가 더해진 그리스의 로디티스 바리크 내추럴 와인을 만나보자

◆ 고대 그리스의 포도밭, 파트라의 이야기

그리스 펠로포네소스 반도의 북쪽 해안에 자리잡은 파트라(Patras)는 로디티스의 진정한 고향이다. 이 지역은 이오니아 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들 위에 포도밭을 가지고 있으며, 그 높이와 배치는 모두 우연이 아니라 천 년의 경험이 담긴 계산의 결과다.

파트라의 포도밭들은 보통 300에서 400미터 사이의 고도에 자리잡고 있으며, 이런 고도에서는 일교차가 크다. 낮에는 지중해의 따뜻한 햇살로 포도가 익어가고, 밤에는 산에서 내려오는 찬바람이 포도의 산도를 보존한다. 마치 진달래가 추운 겨울을 견디고 봄에 피어나듯, 이곳의 포도도 밤과 낮의 극심한 온도차를 견디며 자신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완성해간다. 이것이 바로 로디티스가 다른 포도 품종보다 더욱 상큼하고 신선한 특성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다.

파트라 지역의 토양은 석회질이 풍부하다. 이 석회질 토양은 포도에 깊이 있는 미네랄 감을 부여하며, 와인이 입안에서 펼쳐질 때 마치 바다 소금기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질감을 만들어낸다. 또한 이 토양은 배수가 탁월하여, 포도가 물을 많이 흡수하지 않으므로 더욱 농축된 맛의 포도가 자란다.

◆ 로디티스 품종의 특성과 그리스 와인의 정체성

로디티스는 그리스 전역에서 재배되지만, 특히 펠로포네소스 반도의 파트라 지역에서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이 품종은 신선한 시트러스 향, 흰 꽃 향기, 그리고 허브의 뉘앙스가 특징이며, 높은 산도와 우아한 바디감을 겸비하고 있다. 마치 봄날 산속의 맑은 공기를 마시는 듯한 청량감이 이 품종의 가장 큰 매력이다.

그리스는 와인의 역사가 3000년 이상 이어진 나라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는 와인을 마시는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하며, 고대 그리스인들은 와인을 물과 섞어 마시면서 철학과 예술을 논했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의 지배와 필록세라 재앙을 겪으면서 그리스 와인 산업은 쇠퇴했고, 20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재발견되기 시작했다.

오늘날 그리스는 약 300종 이상의 토착 포도 품종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중 로디티스는 가장 널리 재배되는 화이트 품종 중 하나다. 그리스 와인은 신세계 와인처럼 화려하지 않고, 프랑스 와인처럼 유명하지도 않다. 그러나 그 안에는 지중해의 햇살과 바람, 그리고 수천 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 모금 마실 때마다, 우리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마셨던 바로 그 맛의 후예를 경험하는 것이다.

◆ 로디티스 바리크 와인RODITIS BARRIQUE 2022

/사진제공: yeasy Wines

◆ 와인 정보

- Region: Greece / Peloponnese / Patras

- Winery: Domaine Ligas

- Grape: Roditis 100%

- Vineyard Method: Organic farming/ Fermentation: Native yeast fermentation

- Aging: Neutral oak barrel for 11 months/ Bottling: Unfiltered

- Alcohol: 13% / Serving Temperature: 8-10°C

◆ 도멘 리가스(Domaine Ligas / Ktima Ligas) 와이너리 이야기

그리스 내추럴 와인의 선구자, 도멘 리가스(Domaine Ligas)는 1985년 토마스 리가스(Thomas Ligas)가 설립하였고, 당시 유행하던 국제 품종 재배를 과감히 거부하고, 멸종 위기에 처한 그리스 토착 품종 부활에 매진한 뚝심 있는 와이너리이다.

1980년대, 모든 사람들이 국제 품종을 심을 때 토마스 리가스는 거의 잊혀진 토착 품종으로디티스를 지켰다. 사람들이 그를 괴짜라고 비난할 때도, 그는 자신의 직관을 믿고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포도나무를 돌보았다. 그리고 40년이 지난 지금, 그의 딸 멜리는 세계가 주목하는 내추럴 와인 생산자가 되었다. 로디티스 바리크 와인을 마실 때마다, 당신이 어릴 적 산에서 느꼈던 그 상큼한 기운, 그 순수한 자유로움을 다시 한번 경험하게 된다.

설립 초기부터 일본의 농학자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철학에 영감을 받아 화학물질을 전면 배제하고, 독자적인 유기농법을 도입했다. 현재는 프랑스에서 양조학을 수학한 딸 멜리 리가스(Meli Ligas)가 포도밭을 진두 지휘하며 내추럴 와인으로의 전환을 완성했다.

이들의 와인은 와인 종주국인 프랑스는 물론 런던, 뉴욕 등 세계 미식 수도에서 열광적인 반응을 얻고 있으며, 생산량의 90% 이상이 해외로 수출될 만큼 독보적인 입지를 자랑하고, 아시아에서는 대한민국이 유일한 수입국으로 그 희소성이 더욱 높다.

◆ 와인 특징

로디티스는 그리스에서 오랜 역사와 재배 전통을 지닌 대표 토착 품종으로, 고대 펠라 지역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이름은 '장미'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으며, 분홍빛 껍질을 가진 포도에서 우아한 화이트 와인이 만들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도멘 리가스는 대량 생산용 블렌딩 품종으로 인식되던 로디티스를 단일 품종 프리미엄 와인으로 끌어올리며 새로운 가치를 제시했다. 이를 통해 로디티스의 잠재력을 재조명하고 브랜드의 양조 철학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포도는 펠라 지역의 점토·석회질 토양에서 자란 25년 수령 나무에서 수확되며, 손 수확과 토착 효모를 활용한 자연 발효를 통해 포도 본연의 순수한 개성을 최대한 살렸다.

특히 기존의 신선함 중심 양조에서 벗어나 오래된 중성 오크통에서 약 11~12개월 숙성하는 방식을 도입해 깊이와 복합미를 강화했다. 미세 산화 과정을 통해 오크의 과도한 향을 배제하면서도 정제된 풍미를 끌어낸 것이 핵심이다.

이러한 숙성을 거친 로디티스는 신선한 산도와 미네랄리티를 유지하면서도 더욱 부드럽고 입체적인 맛을 구현한다. 황금빛 색감과 함께 복합적인 향과 긴 여운을 지닌 와인으로 완성되며, 기존 스타일을 넘어선 새로운 로디티스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 테이스팅 노트

Appearance: 밝고 투명한 진주빛에 깊은 황금색이 감돌며, 오크 숙성에서 비롯된 색감과 함께 약간의 탁함이 살아있는 와인의 특성을 보여준다. 잔을 기울이면 부드럽게 흐르는 질감이 우아함을 더한다.

Nose: 진달래 꽃 향을 시작으로 레몬, 오렌지, 망고 등 시트러스와 이국적인 과일 향이 이어지며, 흰 꽃과 허브, 견과류와 은은한 이스트 향이 어우러진 복합적인 아로마를 형성한다.

Palate: 상큼한 산도와 함께 배, 사과, 복숭아의 과실 풍미가 퍼지며, 오크 숙성에서 오는 크리미함과 미네랄 감, 그리고 흙내음과 버섯 같은 자연스러운 뉘앙스가 조화를 이룬다.

Finish: 긴 여운 속에 미네랄과 은은한 짠맛이 남으며, 스파이시한 뉘앙스가 더해져 깊고 인상적인 마무리를 완성한다.

◆ 푸드 페어링

-데일리 페어링: 봄나물 무침, 흰살 생선 구이, 새우 요리, 해산물 샐러드, 신선한 염소 치즈 플레이트,

-비건 페어링: 봄나물 비건 소스 파스타(마늘, 올리브유, 레몬 기반), 구운 아스파라거스와 신선한 레몬 드레싱, 해초 샐러드, 달래 무침, 진달래 화전

-혼술 페어링: 신선한 딸기나 오렌지 샐러드, 견과류나 올리브.

기원전 2200년부터 이어진 펠라의 와인 역사가, 그리스 내추럴 와인의 최고의 와인 생산자토마스와 멜리의 고집스러움으로 이제 우리 가까이에서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다니 이보다 더 흥분될 수 있을까? 한 모금 마실 때마다 당신은 알렉산더 대왕이 태어난 땅, 아리스토텔레스가 포도밭을 소유했던 땅, 바쿠스가 축복한 성스러운 땅의 포도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한 잔 속에서 당신은 다시 한번 봄을 되찾게 될 것이다.

박영신 와인 칼럼니스트(현(現) 한국와인소비자협회 회장)

-박영신 와인 칼럼니스트-

경희대학교 와인 소믈리에 석사 및 조리외식경영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며 학문적 기틀을 다졌다. 와인 전문바와 와인 전문 숍 운영 등 유통 현장의 실무를 두루 섭렵하여, 현장에서 와인 소비자의 니즈를 가장 예리하게 읽어내는 전문가로 정평이 나 있다.

와인 소비자 행동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등재하고 국내 유수 와인 대회의 심사위원을 역임하며 공신력을 쌓아왔다. 현재는 와인 전문 칼럼니스트이자 한국와인소비자협회장으로서 생산자와 유통자, 그리고 소비자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며 대한민국 와인 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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