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경기 둔화로 전통 도료사업의 성장성이 떨어지면서 페인트업계가 뷰티·반도체·이차전지 등 고부가 산업의 소재영역으로 빠르게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페인트 회사'라는 기존 정체성을 넘어 종합소재를 다루는 기업으로의 전환이 성과로도 이어지는 모습이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KCC는 전체 매출의 약 50%를 차지하는 KCC실리콘 사업을 기반으로 최근 뷰티 소재와 화장품 원료 연구·개발을 확대하고 있다. 건자재 중심사업에서 벗어나 퍼스널케어 영역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넓히기 위한 전략이다.
올해만 해도 인도·중국에 이어 유럽까지 주요 글로벌 화장품 원료 전시회에 잇따라 참가하며 신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지난 14~16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인-코스메틱스 글로벌 2026'에서는 실리콘 기반 화장품 제형 데모 시연과 기술상담을 진행하며 글로벌 바이어들을 만났다.
최근 화장품 시장이 클린뷰티·바이오 기반 원료 등을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기능성과 사용감을 동시에 충족하는 소재수요가 확대된다는 점도 맞아떨어졌다. 스킨케어와 메이크업의 경계가 흐려지는 '하이브리드 제품' 확산과 함께 실리콘 기반 원료의 중요성도 커지는 추세다.
페인트업계의 '탈건자재' 움직임은 업계 전반에서 나타난다. 노루페인트는 충격완화와 화재위험 저감기능을 갖춘 이차전지용 첨단소재를 상용화하는 성과를 거뒀다. 항공기·선박·무인기 등에 적용되는 스텔스 도료 등 특수 도료 개발도 병행한다.
삼화페인트는 올해 SP삼화로 사명을 변경하고 종합소재 회사로의 변화를 선언했다. 2018년 반도체 패키징 소재개발에 착수한 지 약 7년 만인 올해 EMC(에폭시몰딩컴파운드) 상용화에 성공했다. 열·습기·충격 등 외부환경으로부터 반도체칩을 보호하는 소재다.
업계가 공통적으로 특수소재 개발에 매달리는 건 전통 도료시장의 성장둔화 영향이 크다. 지난해 국내 주요 페인트 회사의 도료 매출은 전년 대비 약 5~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경기와 밀접하게 연동되는 산업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 실적 변동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대신 뷰티·반도체·이차전지 등에 쓰이는 소재는 산업 성장성이 높고 기술축적 측면에서도 우위를 점해 수익성이 높다는 점에서 각 회사의 미래 먹거리로 떠올랐다. 예컨대 실리콘 기반 소재는 뷰티뿐만 아니라 전기전자·자동차 등 다양한 산업에 쓰일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소재사업은 초기투자 비용이 크고 기술 안정화에 시간이 필요한 만큼 단기간 내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기존 건자재사업과 신사업간 균형을 유지하면서 중장기적으로 연구·개발을 확대해 체질전환에 성공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