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처럼 화장할래"…K미감 배우는데 지갑 연 외국인들[르포]

유예림 기자, 하수민 기자
2026.06.07 12:00

[외국인 2000만 시대, 'K'에 살고 'K'를 산다]<하>①'K'를 입고 바르는 외국인들 만나보니

[편집자주] 지난해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을 비롯해 국내에 살고 있는 외국인을 모두 합하면 2000만명이 넘는다. 이들은 한국인처럼 먹고, 마시고, 입고, 바르는 즉 'K'에 살고(Live), 'K'를 사는(Buy) 등 'K라이프스타일'을 소비한다. 특히 이재명 정부 출범 후 1년간 가시화된 'K이니셔티브'(주도권)의 핵심 성과가 내수 활력에 힘을 불어 넣고 있다. 머니투데이는 단순 유행을 넘어 K푸드, K패션·뷰티가 국내에 있는 외국인의 일상에 스며든 과정을 살피고 이들의 발길이 국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살펴본다.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 올리브영 안국역점에서 스킨스캔 서비스를 이용하고있는 외국인 관광객들. /사진=하수민기자.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 올리브영 안국역점. 피부 진단 서비스 '스킨스캔'을 체험하던 미국 텍사스 출신 트루디 풀(60대)은 추천 제품 목록을 살펴보더니 닥터지 달팽이 크림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는 "예전에 사용해본 제품인데 좋아서 다시 구매했다"며 "노화 관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한국식 스킨케어 루틴을 꾸준히 실천해봐야겠다"고 말했다.

방한 외국인들의 소비 지형이 바뀌고 있다. 관광지와 맛집을 찾던 데서 나아가 한국인이 먹고 입고 바르는 제품과 문화를 직접 경험하는 'K라이프스타일 소비'가 확산하는 모습이다. K뷰티를 구매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고 한국식 미감까지 배우려는 수요가 커지고 있다.

이날 매장 곳곳에서는 외국인 고객들이 피부 진단 결과를 확인한 뒤 추천 제품을 찾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영어 안내문 앞에서 제품 정보를 확인하거나 화장품을 테스트하는 관광객들도 눈에 띄었다. 피부 진단 결과를 휴대전화로 촬영한 뒤 매대를 오가며 제품을 비교하는 모습도 이어졌다.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내 올리브영 광장마켓점에서 만난 대만인 윈팅(34)의 장바구니. /사진=하수민기자

같은 날 찾은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내 올리브영 광장마켓점. 마스크팩 진열대 앞에 선 대만인 윈 팅(34)의 장바구니는 이미 절반 넘게 차 있었다. 그는 "한국 마스크팩이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쇼핑 품목 중 하나"라며 "친구들에게 부탁받은 제품까지 사느라 여러 개를 한꺼번에 담고 있다"고 말했다.

광장마켓점에서는 피부·두피 상태를 진단하는 스킨스캔과 퍼스널컬러 체험을 이용하는 외국인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진단 결과를 확인한 뒤 자신의 피부톤에 맞는 제품을 찾거나 친구와 결과를 비교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 같은 관심은 수치로도 나타난다. 올해 1~5월 올리브영의 외국인 오프라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4% 증가했다. 같은 기간 방한 외국인 관광객 증가율(21%)과 외국인 카드 지출 증가율(22.6%)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안국역점과 광장마켓점의 외국인 매출 비중은 각각 80%, 81%다.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내 코닥어패럴 매장 앞 외국인 관광객들의 모습. /사진=하수민기자

광장시장 일대에서는 K패션에 대한 관심도 확인됐다. 코닥어패럴과 마뗑킴,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매장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서울 한정 상품을 살펴보거나 인기 제품을 문의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K뷰티에 이어 K패션 쇼핑도 한국 여행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중국인 여성 왕 네옥씨(28)가 지난 2일 서울 영등포구 더현대 서울에서 퍼스널컬러 진단을 받고 있다./사진=유예림 기자

"순수함을 잘 표현하는 한국 메이크업을 하고 싶은데 뭐가 어울리는지 몰라서 고민하다 찾았어요."

지난 2일 오후 5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더현대 서울 6층. 퍼스널컬러 진단을 받던 중국인 여성 왕네옥(28)은 가장 좋아하고 따라 하고 싶은 한국 연예인으로 수지를 꼽았다. 그는 피부톤과 이미지 분석을 받은 뒤 추천받은 한국콜마의 '헤비메이크업' 틴트를 입술에 발랐다.

왕 씨는 "강해 보이는 내 이미지보단 귀엽고 청순한 느낌을 좋아하는데 알려준 제품이 마음에 든다"고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화장품을 구입하는 단계를 넘어 한국식 미감과 스타일링을 배우는 새로운 관광 공식이 백화점 안에 만들어진 모습이었다.

현대백화점과 뷰티 체험 브랜드 틴트트레이가 마련한 퍼스널컬러·체형 분석 팝업스토어에서 만난 외국인 관광객들은 진열대가 아닌 거울 앞에 먼저 앉았다. 이어 쇼핑백보다 본인의 퍼스널컬러가 적힌 진단표를 챙겼다. 퍼스널컬러는 얼굴 피부 색별로 잘 어울리는 화장법과 색상 등을 찾는 미용 이론으로 국내 패션뷰티 시장에서 유행으로 자리 잡은 체험 콘텐츠다.

과거 외국인 관광객들은 면세점에서 화장품을 담았다면 이젠 자신에게 맞는 K스타일을 찾으러 오는 시대가 됐다. 실제 팝업이 열린 지난달 8일부터 이달 2일까지 외국인 250여명이 체험했는데 외국인 비중이 70~80%로 내국인보다 많았다.

퍼스널컬러 분석을 맡은 박아름 실장은 "외국인들은 좋아하는 한국 연예인의 분위기를 공유하고 싶어한다. 방탄소년단 정국과 뷔, 에스파 카리나, 아이브 장원영의 퍼스널컬러가 뭐냐고 많이 물어본다"고 설명했다.

더현대 서울에 마련된 퍼스널컬러와 체형 진단 팝업스토어. 이곳에선 피부톤과 이미지, 체형 분석을 통해 어울리는 화장법과 옷 스타일링 방식 등을 추천해준다./사진=유예림 기자

이날 말레이시아 남성 조엘(30)도 옷 추천을 위해 한국 여행 중 이곳을 찾았다. 조엘은 살고 있는 미국에서도 한국인이 운영하는 미용실에 갈 정도로 한국 스타일링을 선호한다. 그는 "아모레퍼시픽의 미쟝센 샴푸, AHC 선스틱을 자주 쓴다. 한국 제품은 세련돼서 브랜드 상관없이 좋아한다"고 말했다.

박아름 실장은 조엘의 가슴, 허리, 엉덩이둘레, 어깨너비 등을 측정했다. 옷 종류와 색상이 표기된 사진 수십장을 화장대 위에 펼쳐놓고 어울리는 옷차림을 영어로 설명했다. 박 실장은 "넓은 어깨에 비해 하체는 보통인 체격이라 밑을 밝게 입어야 몸의 비율이 맞아 보인다. 데님과 가죽이 잘 맞는 체형"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피부와 체형에 맞는 스타일링 추천은 미국엔 없다"며 "오늘 진단 결과를 토대로 현대백화점에서 옷을 사려고 한다"고 말하며 쇼핑을 시작했다. 그는 인스타그램에 이날 퍼스널컬러 체험 영상도 올렸다. 왕 네옥씨도 "진단받은 종이를 들고 올리브영에 가고 옷도 살 것"이라며 "중국 화장품 가게에선 어울리는 립스틱을 추천해주는 정도인데 한국인의 특별한 미감으로 스타일 전체를 알려줘서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남성 조엘씨(30)가 지난 2일 서울 영등포구 더현대 서울에서 체형을 진단한 뒤 어울리는 옷 스타일링 방식을 추천받고 있다./사진=유예림 기자

K스타일을 전수받은 이들의 관광은 구매로도 이어졌다. 이곳에선 틴트트레이와 한국콜마가 협업해 만든 메이크업 제품을 판매하는데 구매전환율이 50%다. 퍼스널컬러를 진단받은 방문객 2명중 1명이 화장품을 구입한다는 의미다.

한국인의 일상을 배우고 공유하는 문화가 확산하자 현대백화점은 체험형 콘텐츠로 관광 수요를 겨냥한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외국인들이 쇼핑뿐 아니라 문화를 즐기는 수요에 맞춰 더현대 서울에 외국인 팝업 공간 '라이브 서울'을 열었다"며 "K브랜드 팝업스토어를 비롯해 한식 수업, 전통놀이 등 한국 문화를 체험하는 콘텐츠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남성 조엘씨(30)가 지난 2일 서울 영등포구 더현대 서울에서 체형을 진단한 뒤 어울리는 옷 스타일링 방식을 추천받고 있다./사진=유예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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