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Inc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공시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6월 공정거래위원회가 쿠팡에 부과한 1억2100만달러(약 1628억원)의 과징금을 올해 6월 완납했다. 매출 50조원이 넘는 대형 유통사 쿠팡도 2년에 걸쳐 6회 분납해야 버틸 수준으로 '징벌적 과징금'은 이미 현실이 된 셈이다.
'재계 저승사자'로 불리는 공정위의 위세는 막강하다. 영장 없이 전격적으로 진행한 현장 조사에서 확보한 내밀한 자료를 바탕으로 시정명령과 거액의 과징금을 물리면 버텨낼 기업이 거의 없다. 공정위 처분 논리에 허점이 있거나 반론을 펴고 싶어도 '후속 제재' 우려에 입장을 내지 않는 게 관례가 됐다.
2014년 로켓배송 서비스를 도입해 유통 업계 판도를 바꾼 쿠팡은 한동안 혁신의 상징이었다. 국내 물류망에 10조원을 투자한 '계획된 적자' 전략으로 이젠 한 달에 3200만명의 고객이 사용하는 국민 플랫폼이 됐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공정위를 비롯한 정부 규제 기관의 집중적인 규제 타깃이 되면서 쿠팡엔 '독점', '불법' 등 부정적 이미지가 확산했다.
2024년 6월 공정위는 PB(자체 브랜드) 상품 밀어주기 판매를 위한 알고리즘 조작 혐의로 쿠팡에게 1400억원대(잠정, 확정액 1억2100만달러) 과징금을 부과하고 검찰 고발했다. 공정위가 단일 유통사에 부과한 과징금 중 역대 가장 큰 규모였다.
공정위는 쿠팡이 PB 상품을 플랫폼 검색순위 상단에 노출하도록 알고리즘을 설정하고, 임직원을 동원해 구매 후기를 작성한 건 '공정한 경쟁을 저해한 불법 행위'라고 봤다. 쿠팡은 이 같은 제재 논리를 반박한다. 앱 상단에 장기 노출된 생수, 화장지, 물티슈 등 PB 상품은 알고리즘을 조작한 게 아니라 일반 제조사 대비 반값 수준이어서 가성비를 중시하는 고객들이 선택한 결과라는 것이다.
현재 2심 변론을 진행 중인 이번 사건의 재판 결과에 따라 국내에서 영업 중인 온오프라인 유통사의 '상품 진열' 전략도 대대적인 수정이 불가피하단 게 업계의 시각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아마존이나 월마트, 코스트코 등은 온오프라인 공간에서 규제 없는 상품 진열을 하고 있다"며 "PB 상품 노출을 줄이면 고객도 손해"라고 말했다.
대규모 과징금은 자금 운용에도 큰 타격이다. 2년 만에 1600억원대 과징금을 완납한 쿠팡은 지난 6월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정보유출 사건으로 부과한 6200억원대 과징금을 또 내야 한다. 자금 여력 상 이번에도 분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후속 물류센터 투자 위축과 이에 따른 지방 고용 감소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쿠팡이 승소해도 손실이 불가피하다. 과징금을 돌려받더라도 3~5년간 이어진 소송 기간 실추한 기업 이미지 훼손, 기업가치 하락 등은 복구하기 어렵다. 작년 말 500억달러가 넘었던 쿠팡의 시가총액은 거액의 과징금과 잇단 규제, 제재 리스크가 반영되면서 최근엔 절반 수준인 270억달러대로 추락했다.
쿠팡뿐 아니라 롯데, 신세계 등 국내 대형 유통사들도 과거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납품업체 대상 갑질 의혹 등으로 공정위 제재 처분을 받고 3~5년에 걸친 법적 분쟁을 진행한 사례가 있다. 이에 불복해 승소한 사건이 있지만 공정위는 별다른 입장이 없다. 훼손된 이미지를 복구하는 건 오롯이 기업의 몫이다.
전문가들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명예교수는 "공정위는 조사, 기소(심사보고서 작성), 의결(1심 판결 및 처벌)을 단일 행정기관에서 독점한다"며 "2015년~2020년 공정위 사건 처리 건수는 6910건으로 같은 기간 미국의 230건, EU의 65건, 일본의 140건과 비교할 때 과잉 개입"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최근 공정위 현장조사가 쿠팡 본사에서 거부돼 무산된 사건은 법원의 사법적 영장 없는 행정조사의 강제성과 절차적 정당성을 둘러싼 저항이며, 검사와 판사의 역할을 한 기관이 독점하는 기형적 체계의 한계를 드러낸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