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프린터 바람 탄 '누구나 제조창업'…시제품 '그 이후'가 없었다

3D프린터 바람 탄 '누구나 제조창업'…시제품 '그 이후'가 없었다

최우영 기자, 이승주 기자
2026.09.17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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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 '메이커 운동' 쇠퇴와 맞물려
"트렌드에 휩쓸린 정책의 예견된 한계"

연도별 메이커스페이스 현황/그래픽=김지영
연도별 메이커스페이스 현황/그래픽=김지영

전국민 모두의 '제조업 창업'을 가능케 하겠다던 메이커스페이스가 시행 8년만에 쇠락하게 된 배경에는 전 세계적으로 시들해진 '3D프린터 열풍'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2018년 메이커스페이스 사업이 시작될 때의 구상은 단순했다. 3D프린터와 레이저커터를 갖춘 작업장을 동네마다 두면,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시제품을 만들고 창업까지 이어간다는 것이었다.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은 2013년 국정연설에서 3D프린팅을 '제3의 산업혁명'으로 칭하며 "거의 모든 제품의 제작 방식에 혁신을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한국 정부도 이 흐름에 올라탔다. 2014년 미래창조과학부가 국내외 메이커 운동 사례를 조사해 '메이커 문화 활성화 방안'을 연구했고 2017년 7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참여형 혁신창업 기반 구축을 위한 한국형 메이커스페이스 확산방안'을 내놨다. 누구나 참여하는 창업 기반을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고등학교도, 도서관도 '메이커스페이스'
2019년 12월 23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청중학교 메이커스페이스 교실에서 학생들이 자율주행 자동차를 시연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019년 12월 23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청중학교 메이커스페이스 교실에서 학생들이 자율주행 자동차를 시연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초기 선정 기관은 이 취지를 적극 반영했다. 16일 오세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이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 메이커스페이스 사업을 시작할 당시 대학 산학협력단과 테크노파크만 뽑은 게 아니었다. 영등포고, 여수공고 같은 일반 고등학교가 선정됐고 노원청소년센터와 고양어린이박물관, 옻칠목공체험관광협동조합도 이름을 올렸다. 창업 지원기관이라기보다 생활 공간에 가까운 곳들이었다.

하지만 성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 창업진흥원의 '메이커스페이스 구축 운영사업 성과 조사'에 따르면 첫해 구축된 65곳 가운데 창업기업 배출 실적이 있는 곳은 21곳에 그쳤다. 나머지 44곳은 한 곳도 배출하지 못했다.

정부는 2021년 5월 '창업 활성화를 위한 메이커스페이스 효율화 방안'을 내놓고 방향을 틀었다. 제조기업 등이 참여하는 전문랩을 확대하고, 일반 국민들이 참여하는 일반랩은 대폭 줄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전문랩 예산이 일반랩을 역전하기 시작했다.

한때의 유행 '3D프린터'의 한계
3D프린터로 제작한 티탸늄합금소재 인공두개골. /사진=NIPA
3D프린터로 제작한 티탸늄합금소재 인공두개골. /사진=NIPA

메이커스페이스의 한계는 3D프린터의 한계와 맞닿아 있다. 3D프린터와 레이저커터로 시제품은 만들 수 있지만, 실제 판매할 물건을 만들려면 양산 설계와 제품 인증, 공정 구축이라는 다음 단계를 넘어야 한다. 동네 작업장 규모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중기부 관계자 역시 "시제품에서 창업으로 연계되는 게 별로 없었다"고 돌아봤다.

해마다 시제품 제작 건수와 실제 신규 창업으로 이어지는 수치의 괴리가 이를 증명한다. 사업 2년차인 2019년엔 시제품 16만578개가 만들어졌으나 신규창업은 단 한 건도 없었다. 메이커스페이스 관련 신규 창업이 가장 많았던 2023년의 경우 시제품 16만482개가 만들어졌으나 창업으로 이어진 건 519건, 전환율은 0.32%에 불과했다.

올해 도입된 제조전문형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이다. 전용공간 1000㎡ 이상을 확보하고 전문 장비·인력을 보유한 기관이 초도양산 역량을 갖춘 전문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해야 신청할 수 있다. 설계 검증과 공정 설계, 원가 분석, 양산성 평가까지 통합 지원하는 구조다.

조경원 중기부 창업정책관은 지난 1월 제조전문형 메이커스페이스 주관기관을 모집하면서 "메이커 스페이스는 단순한 메이킹 공간이 아니라, 전문기업과 함께 제품화·초도양산까지 책임지는 제조창업 거점으로 운영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8년 '메이커 문화 확산' 성과는 과연…
2018년 11월 열린 전남 광양 '광양 메이커스페이스' 개소식. /사진=광양시청
2018년 11월 열린 전남 광양 '광양 메이커스페이스' 개소식. /사진=광양시청

메이커스페이스 도입 당시의 취지 중 하나는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메이커 문화 확산'이었다. 이는 창업 건수처럼 별도의 측정 지표가 없어 정량 평가가 불가능하다.

메이커스페이스의 몰락은 전 세계적인 '메이커 운동'의 쇠퇴에 따른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메이커운동의 본산인 미국의 '메이크 매거진'은 2019년 6월 영업을 중단하고 전 직원을 해고했다. 2017년 전 세계 메이크페어 방문객은 누적 150만명으로 정점을 찍고 그 이후로 점점 줄기 시작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메이커스페이스 사업을 시작한 2018년은 이미 메이커 운동이 고점을 찍은 시기였기에 그 이후의 사업 축소는 예견된 결과였다"면서 "수년 전 메타버스 열풍이 순식간에 사그라들면서 벌려놓았던 정부 사업들이 무색해졌듯이, 일시적 트렌드에 휩쓸려 추진된 정책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고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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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영 기자

미래산업부 유니콘팩토리에서 벤처스타트업 생태계를 취재합니다.

이승주 기자

안녕하세요. 정치부 이승주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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