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눈이 오던 크리스마스이브 날, 서울 방배동의 한 카페에서 두 사람은 처음 만났다. 김종진(기타, 보컬)은 재즈피아니스트 정원영의 소개로 만난 동갑내기 드러머 전태관의 실력이 궁금했다.
김종진은 허비 행콕의 명곡 ‘카멜레온’(Chameleon)을 기차게 연주하던 전태관을 보고 “아이코, 이 친구 봐라”하며 깜짝 놀랐다고 한다. 당시 펑크(funk) 스타일의 곡을 연주하는 이가 드물어, 이런 스타일을 연주하면 ‘엘리트 뮤지션’으로 손꼽히기 일쑤였다.
두 사람은 바로 의기투합했다. 이들은 1986년 김현식의 백밴드로 ‘봄여름가을겨울’이란 이름을 처음 알렸다. 88년 독립해 내놓은 첫 음반은 한국에선 쉽게 볼 수 없는 실력파 연주자들의 세계가 물씬 묻어있었다.
노래 음반에 4개의 연주곡이 실린 것도 파격적이었다. 록과 발라드 문법에 익숙한 당시 대중이 세련된 재즈의 향기를 원없이 맡을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그들의 공이 크다.
그렇게 지금까지 30년이 넘는 세월을 두 사람은 함께 했다. 돈 때문에, 성격 때문에 길어야 10년을 함께 하지 못하는 멤버들의 냉혹한 현실을 고려하면, 이들의 행보는 불가사의였다. 게다가 김종진, 전태관 두 사람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저는 이카루스처럼 날아오르기만 하는 이상주의자였는데, 태관이는 촛농으로 만든 날개 달고 날면 떨어진다고 늘 옆에서 말린 현실주의자였죠. 그렇게 서로 달라도 사이가 유지된 건 단점을 보는 시각때문이었어요. 상대방의 단점을 바꾸고 싶어하는 장점 많은 이의 욕망이 크면 클수록 사이가 나빠지지 않겠어요?”(김종진)
김종진이 보는 전태관은 ‘유(柔)한’ 친구다. 음악인의 기질이 보통 예민하고 까칠하고 럭비공 같은 성격으로 상징되듯, 김종진도 그렇게 친구를 괴롭혔다. 하지만 전태관은 언제나 웃으며 받거나 묵묵히 맡은 임무를 수행할 뿐이었다.
올해 봄여름가을겨울은 데뷔 30주년, 와인콘서트를 연지 10주년을 맞았다. 그런데 마냥 기뻐할 수가 없다. 2년 전 신장암으로 수술한 전태관이 최근 어깨뼈로 암이 전이돼 다시 병원 신세를 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깨뼈는 이미 절개해 티타늄으로 대체했고, 항암 치료를 병행하고 있는 와중에 암은 다시 엉덩이뼈로 옮겨갔다. 이제 앞으로 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전태관은 최근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여전히 밝게 웃으며 되레 상대방의 안부를 걱정했다. 전화를 끊으면 그는 다시 3일 구토, 3일 치료의 악순환을 반복해야할 것이다.
김종진은 암의 재발 소식을 듣고 밤마다 울었다. 가족들 몰래 아래층 계단에서 눈물을 닦아도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이 가장 큰 고통이었다. 수많은 고민 끝에 김종진이 내린 결론은 하나다. 친구를 위해 25일 출발하는 스페인 산티아고행 티켓을 끊은 것이다.
“프랑스에서 출발해 33일간 900Km를 소화할 거예요. 산티아고에 있는 성당 기둥을 만지면서 기도를 하면 딱 한가지 소원은 들어준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결정했어요. 친구의 건강을 달라고. 드럼은 안쳐도 된다고. 겉으론 웃고 있어도 지금 굉장히 무섭고 공포스러울 거예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다는 게 너무 초라할 뿐이에요.”
봄여름가을겨울은 ‘브라보 마이 라이프’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석양도 없는 저녁 내일 하루도 흐리겠지/힘든 일도 있지 드넓은 세상 살다보면/하지만 앞으로 나가 내가 가는 곳이 길이다~’
힘들고 불안한 국민에게 널리 전파한 이 희망가는 이제 그들이 되돌려받을 차례인 것 같다. ‘지금껏 달려온 너의 용기를 위해’ 우리의 응원이 절실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