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정치적 구호로만 여겼다. '일본 경제의 침몰'을 한창 얘기하던 2년 여 전의 일이다.
"세 개의 화살(三本の矢)'을 동시에 날려 일본 기업을 둘러싼 4중고(四重苦)를 제거함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기업과 개인이 활동하기 좋은 나라를 실현하겠다"던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경제산업상의 취임사를 말할 때만 해도 '설마?'라고 의구심을 품었다.
2013년 2월 아베노믹스를 얘기하며 취임할 당시 모테기 도시미쓰 경제산업상은 세 개의 화살로 4중고를 해소해 '새로운 차원의 일본 경제(프로그레시오 자포니카)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일본은 △물가 안정과 금융정책 완화 △수요창출을 위한 과감한 재정정책 △성장 전략 실현을 통한 투자확대 등 세개의 화살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내보였었다. 2년여 전의 아베 정권의 의지는 양적완화로 이어졌고, 이는 일본 수출기업들의 최근 부활로 결실을 맺고 있다.
엔화 약세를 무기로 토요타는 지난해(2015년 3월 결산기) 사상 최대의 이익인 2조 7000억엔(약 24조 5500여억원)을 올렸고, 해외로 빠져나갔던 일본 기업들은 하나둘씩 자국으로 생산시설을 'U턴' 하고 있다.
2012년만 해도 일본 도쿄증시 1부에 상장된 전자업체의 시장가치를 모두 합쳐도 삼성전자 시장 가치의 2배에도 못 미쳤고, 소니와 샤프 등 일본 전자기업들의 이익을 다 합쳐도 삼성전자의 절반에도 못 미칠 정도로 일본은 위기에 빠졌었다.
비슷한 시기 '잘 나가던' 우리나라도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한국경제를 이끌고 있는 30대 그룹 사장단을 모아놓고 규제완화를 얘기하면서 기업들에게 일자리 창출과 투자확대를 독려했다.
하지만 2년 여 만에 한국과 일본의 분위기는 역전됐다. 우리의 전차군단(전자 및 자동차 업종)을 대표하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엔화 약세로 일본 경쟁기업들의 위협 속에 놓여 있다.
지난해 10대 상장기업의 매출액은 2.1% 줄었고, 영업이익은 31.3% 급락했다. 올해 1분기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같은 분기에 비해선 매출이 5% 줄고 영업이익도 14.1% 급감했다.
대기업들은 그나마 낫다. 일본 부품업체들과 경쟁하던 중견 중소 부품 업체들은 그동안 가졌던 가격 경쟁력마저 상실하면서 설 곳을 잃고 있다. 엔화가치가 30% 가량 떨어지면서 가격경쟁력이 30% 개선되면서 일본 기업들은 한국과 중국에서 조달하던 부품을 일본 내 자국 기업들로부터 조달하고 있다.
아베가 연금수입으로 살아가는 일본의 노년층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엔화약세를 용인해 일본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온 결과다. 아베가 강한 일본을 만들어갈 때 우리는 기업들에 부담을 안겨주는 '탄소배출권 거래제 도입'과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등 각종 규제를 도입했다.
탄소배출이 많은 미국도 중국, 일본도 하지 않는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굳이 우리가 왜 먼저 하느냐는 기업들의 목소리는 정부와 정치권의 힘에 소리 없이 사그라들었다. 이미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는 산업에 규제의 덫을 씌우는데 힘을 쏟았다.
휴대폰, 반도체, LCD, 제철소, 조선소 등 우리 경제의 근간이 되는 산업들이 국내에서 경쟁력을 잃어 해외로 발길을 돌리는 것을 고민하는 시점에 규제의 칼을 들이밀며 해외로 등을 떠밀고 있다.
1급 전범의 외손자로 2차 대전 당시 아시아인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일본의 만행에 대해 부끄러움이 없는 아베에게 '인간'으로서 배울 것은 별로 없다.
하지만 약하면 지배받을 수밖에 없고, 지배받지 않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강한 일본을 만들어가는 아베의 경제정책 운용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현대사회에서 약함의 측도는 국가의 경제력이라는 점을 아베는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엔화약세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 정치권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한가하게 대권 놀음이나 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임진년을 기록한 서해 유성룡의 '징비록'을 다시 꺼내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