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가 없다."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말이다. 보통은 황당하거나 기막힌 일을 당했을 때 나오는 표현인데 최근엔 1200만 관객을 끌어 모으며 화제의 중심의 선 영화 '베테랑' 때문에 더 회자되고 있다. 극중에서 안하무인 재벌 3세 '조태오'를 연기한 배우 유아인이 시종일관 내뱉은 대사여서다. 특히 이 말의 어원을 설명하면서 악행을 저지르는 유아인의 연기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유아인이 "나무로 된 맷돌 손잡이"라고 친절(?)하게 알려준 '어이'는 사실 '어처구니'를 잘못 말한 것이다. 실제로 콩을 넣고 맷돌을 돌려야 하는데 정작 손잡이가 없는 상황을 '어처구니가 없다'고 한다.
서두부터 '어처구니' 얘기를 꺼낸 이유는 최근 금융투자업계에서 벌어진 '어처구니' 없는 일 때문이다. 문제의 발단은 이렇다. 앞서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선물사 등을 회원사로 두고 있는 금융투자협회는 7개월간 공석이었던 김준호 전 미래창조과학부 우정사업본부장을 내정했다.
자율규제위원장은 증권사나 자산운용사, 선물사 등 회원사의 위법 행위에 대한 조사와 자율 제재, 분쟁 조정 업무 등을 총괄하는 자리다. 관련 규정을 위반하거나 시장을 교란한 업체에 대해선 과징금을 부과하고 영업을 제한할 수 있다. TV나 신문 광고 심의도 한다. 권한이 큰 만큼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예금(은행)과 보험 업무만 취급하는 우정사업본부 출신 인사가 올 자리가 아니라는 게 금융투자협회 안팎의 목소리다. "업계를 무시한 인사"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처우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3년 임기가 보장되는 자율규제위원장은 연봉이 3억6000만원을 넘는데다 개인사무실과 비서, 의전차량도 제공된다. 그러다보니 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금융감독원 전 부원장 등 금융당국 출신 고위 인사와 미래부 등 정부부처 출신 퇴직 인사의 경쟁이 치열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비전문가의 낙하산 인사라는 참극(?)으로 이어진 배경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퇴직 후 유관 기관에 갈 수 없는 규정 때문에 부처간에 '바터(주고받기) 인사'가 이뤄진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자율규제위원장의 낙하산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초대 위원장인 안광명씨는 기획재정부 국장, 직전인 2대 위원장 박원호씨는 금감원 부원장 출신이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자율규제위원장 연봉은 회원사의 회비로 나가는 것인데 업무와 전혀 연관이 없는 인사가 내정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업계 현안을 해결해줄 적임자가 필요한데 한심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방민지구 심어방수(防民之口 甚於防水)'.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구절이다. '백성의 입을 막기란 홍수를 막기보다 더 어렵다'는 뜻으로 여론의 무서움을 강조한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금융투자업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