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가 일어난다고 자동차 회사를 없애는 것은 현실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사고가 나지 않도록 최대한 예방하고 피해를 최대한 복구해 위로하는 게 최선이고 순리다.
그런 차원에서 반도체 사업장 질환 의심 피해자 및 그 가족들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 삼성 등 3자가 대화를 통해 사고예방과 피해보상에 대해 논의해 온 것은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이런 진일보가 최근 사단법인 설립문제를 놓고, 암초를 만났다. 1000억원 중 300억원 가량을 노동시민운동가가 중심인 반올림 주도로 설립되는 공익재단에 쓰는 것에 상호 합의하지 못하면서 삼성과 가족대책위원회가 별도로 ‘보상위원회’를 발족했다.
반올림은 삼성전자가 조정위의 ‘사회적 합의’를 깼다고 비난하며,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공동성명이나, 자칭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친구라는 폴 조뱅 프랑스 디드로대 동아시아학과 교수의 공개서한 등을 통해 ‘사회적 합의 파기’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반올림이 주장하는 사회적 합의의 근간이 되는 사회계약론의 입장에서 보면 반올림 자체는 이번 계약의 직접 당사자는 아니다.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한 노동자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삼성전자와 그 사업장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의 가족간 ‘사회계약’의 문제다.
반올림이 협상이나 계약에서 제3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설립 당시 여덟 가족들과 그 이외의 잠재적 피해자들로부터의 위임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여덟 가족 중 두 가족을 제외한 여섯 가족은 반올림이 유족을 대표하지 못한다며 가족대책위를 구성해 삼성과 별도로 협상을 진행해왔다.
‘반올림=피해가족‘이라는 등식이 사라지면서 대표성도, 계약 주체로서의 지위도 잃었고, 사회적 합의 과정에서 반대표를 던질 위치에 있지도 않게 됐다.
정의론의 관점에서 접근해보자. 사회적 불평등은 ‘모든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갈등을)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 정의론의 첫 번째 원칙이다. 이런 측면에서 반올림이나 일부 가족들에게는 이익이지만, 다른 피해가족이나 삼성전자에게는 불이익이 될 때 과연 정의가 실현됐다고 볼 수 있을까.
가난한 사람들의 것을 빼앗아 부자에게 나눠주는 것이 정의가 아니듯, 부자의 것을 일방적으로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 또한 정의는 아니다.
삼성전자가 1000억원의 자금을 출연하는 이유는 삼성전자나 협력사 근로자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궁극으로는 삼성전자에게도 이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조정안은 삼성전자나 피해자 가족이 아닌 노동시민단체들의 사단법인 운영에 300억원 가량이 사용된다는 측면에서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돌아간다고 하기는 어렵다. 시민단체의 사적 이익을 구현하는 수단으로 사단법인이 활용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계약 당사자들 양측이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의 조정이 이뤄져야 정의가 실현되고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조정위 권고안을 반올림은 수용하고, 삼성전자와 가족대책위는 일부 수용 불가를 밝힌 것만 봐도 '조정'은 그 이름값을 하지 못했다.
이슈의 본질은 명확하다. 반도체산업장의 건강권을 확보할 수 있는 합리적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동안 반올림의 역할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다만 반올림의 역할은 삼성과 발병자 가족들을 연결시키는 디딤돌로서의 반올림(#)의 역할까지다. 스스로가 사회적 합의의 주체자로서 영속성을 가지려는 것은 오만으로 보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