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로 온나라가 시끄럽다. 한 나라의 역사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는 ‘국가’라는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정신적 뿌리다.
후손들에게는 그 나라의 정체성(正體性)을 설명하는 핵심 정수이기도 때문이다. 이런 이슈에서 찬반양론으로 나뉘어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는 것 자체를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다. 민주적 사회는 항상 논쟁 속에 성장하기 때문이다.
논쟁 속에 서로 다른 견해를 어떻게 하나로 모을 것인가의 해답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자기애가 강한 인간이라는 존재의 특성상 논쟁은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밖에 없다.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논쟁이 일고, 그 가운데서 어느 것이 더 정의로운가를 가려 그 길로 가는 것이 공동체가 살아 나가는 방식이다. 그래야 국가라는 공동체가 흩어지지 않고 올바르게 유지·영속될 수 있다.
역사 교육의 중요성은 2500여년전 고대 그리스 시대에도 화두였던 모양이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자신의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대화를 중심으로 써 내려간 저서 ‘국가(Politeia: 정체-政體)’에서의 핵심 화두도 ‘시가(詩歌)’의 교육이었다.
당시 도시국가인 그리스에 살던 소크라테스는 더 큰 국가를 건설하는데 있어서 수호자들이 받게 될 교육으로 ‘몸을 위한 체력단련’과 ‘혼을 위한 시가(詩歌) 교육’으로 나눴다.
시가는 가장 오래된 문학 장르 중 하나이면서 전설과 역사서의 성격을 담은 것으로 시가 속에 담긴 정신이 국가 구성의 정신적 뿌리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당시 존경받는 시인들이 설화와 신화를 다양하게 꾸며내는데 대해 국가 건설의 꿈을 가진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의 생각은 달랐다.
‘국가’에서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형인 아데이만토스의 질문에 “우리는 경솔하게 아이들이 아무나 지어낸 아무 이야기나 듣게 해서는 안되며, 그들이 지녀야 한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정의, 선)과는 대체로 정반대가 되는 견해를 마음 속으로 갖도록 내버려둬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사시에서건 서정시에서건 비극에서건, 언제나 사실 그대로 묘사해야 한다”고 시가교육의 지침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시가 교육의 중요성과 관련해 인간 혼의 깊숙한 내면으로 침투해 우아함을 가져다줌으로써 혼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고 했다.
소크라테스는 “제대로 교육을 받은 사람은 예술작품이나 자연의 결점들을 가장 분명히 알아보게 되고, 그것들의 추함이 역겨워 아름다운 것들을 칭찬하고 반긴다”며 “아름다운 것들을 그렇게 혼 안으로 받아들이면 그 자신도 아름답고 훌륭해질 것이다”라고 교육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요즘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역사 교육이 어린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과 관련해서도 고대 철학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제대로 된 시가교육을 받으면 아직 젊어서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기 전에도 추한 것이면 무엇이든 올바르게 비판하며 싫어하다가, 이성적 사고를 할 수 있을 시점에는 이런 교육 덕분에 더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등 과거 철학자들이 모든 사회적 고민과 갈등을 푸는 길을 찾아주는 해법이 될 수는 없다. 그들 또한 영원한 진리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500여년 동안 그들의 사고와 생각이 우리 속에서 논의돼 왔다는 점에서 참고는 할만하다.
자신의 이익을 등 뒤에 숨겨두고 정의라는 이름으로 자기 주장을 내놓기보다는 고대 철인의 철학적 고민에 접근해 해법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