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고유가시대도 반드시 온다

세종=유영호 기자
2015.12.29 03:17

'0'원. 내년 성공불융자 예산이다.

성공불융자는 1·2차 석유 위기를 계기로 해외자원개발의 중요성이 주목받으면서 1984년 도입됐다. 기업이 해외 유전·광구 등에 투자할 때 전체 투자금의 20%가량을 정부 예산으로 낮은 이자에 빌려주는 자금이다.

사업이 실패하면 융자금을 전액 감면하고 성공할 경우 원리금 외에 특별부담금을 징수한다. 위험부담이 큰 해외자원개발 사업의 '마중물'로 투자를 촉진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하지만 해외자원개발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이 확산되면서 '눈먼 돈', '비리의 온상'이라는 꼬리표가 붙더니 끝내 전액 삭감됐다. 올해 예산은 1438억원이었다.

업계는 "예상했던 일"이라며 덤덤한 모습을 보이지만 속내는 다르다. 당장 내년 검토했던 해외자원개발 사업에 대해 줄줄이 재검토에 들어갔다. 일부에서는 민간이 자발적으로 투자하면 된다고 하지만 애초에 성공불융자를 도입하게 된 배경을 생각하면 쉽지 않은 얘기다.

실제 박근혜정부 들어 관련 예산이 급감하면서 해외자원개발 투자 건수는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2011년과 2012년에 각각 42건, 18건이던 게 2013년 8건, 2014년 5건, 2015년 4건 등으로 크게 줄었다. 그나마 내년은 '0건'으로 줄 위기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지는 저유가 기조를 볼 때 지금이 해외자원개발의 적기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미국 금리 인상까지 맞물리면서 자원시장에 대형 유·가스전, 광산 등이 '땡처리'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경쟁국들은 벌써 민첩하게 움직이고 있다. 일본은 내년 해외석유개발 관련 예산을 사상 최대규모인 748억엔(약 7237억원)으로 책정했다. 2030년까지 자주개발률을 40%로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중국 역시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워 '자원 쇼핑'을 계속하고 있다.

저유가-고유가 시대는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한국은 외환위기 전후 저유가 상황에서 해외자원개발 투자를 '올스톱'했다. 하지만 2005년을 기점으로 유가가 상승하면서 부랴부랴 해외자원개발을 재개했고 닥치는 대로 유·가스전, 광산을 사들였다. 준비없이 급하게 뛰어든 결과는 온 국민이 아는대로다.

한국은 에너지·자원의 97%를 수입에 의존하는 에너지 극빈국이다. 세계 5대 산업강국이라는 위명도 안정적인 자원 확보 없이는 허명에 불과하다. 에너지·자원의 안정적 확보는 경제 및 정치 논리를 넘어 안보의 영역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다.

앞에 출발한 수레가 엎어졌다면 뒷 수레는 수레바퀴 자국을 잘 살피며 위험을 경계해 목적지로 가면 되는 일(복차지계 覆車之戒)이다. 뒷 수레를 출발점으로 돌려보내는 일은 멍청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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