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상]누구를 위해 장벽을 세웠나

송지유 기자
2016.01.21 03:28

동반위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이후 해당산업 축소…중소기업 못 살리고 대기업·소비자만 손해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 입니다.

초등학교 때 교실에서 사용하던 나무책상에는 대부분 한가운데 선이 그어져 있었다. 1980년대 서울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당시는 짝과 책상 한 개를 나눠쓰는 '2인 1책상' 시대였다. 책상 서랍은 칸막이로 분리됐지만 책을 펼쳐놓거나 필기하는 상판에는 명확한 영역(?) 표시가 없었다.

친한 친구를 짝으로 만나는 행운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으니…. 학년이 바뀌면 옆자리에 앉은 낯선 짝과 서로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기 위한 묘한 신경전이 심심찮게 펼쳐졌다. 30cm 자를 책상 가운데 대고 사인펜으로 공평하게 나누는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다행이다. 신경전이 몸싸움으로 바뀌고 결국 미술용 칼을 들어 책상에 깊은 흠집을 내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책상에 그어진 선으로 짝과의 관계나 서열 파악도 가능했다. 비율이 50대 50이 아니라 60대 40, 70대 30으로 나뉜 책상도 있는가 하면 중앙선을 침범한 물건은 상대방에게 소유권이 넘어가는 엄격한 규칙을 정해놓은 짝들도 있었다.

뜬금없이 1980년대 추억팔이에 나선 건 시장 현실을 무시한 채 이분법 논리를 적용한 동반성장위원회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 때문이다. 중소기업과 골목상권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도입한 이 제도는 대부분 대기업의 사업 확장을 제한하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하지만 지난 2013년 2월 도입해 3년이 지났지만 가시적 성과는 커녕 부작용만 양산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제과·외식업 규제다. 동반위는 전년 말 점포 수의 2% 범위 안에서만 신규 점포를 열 수 있도록 권고하고 있다. 또 동네빵집에서 도보로 500m 안에 신규 점포를 열지 못하도록 해 곳곳에서 분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 결과 국내 대표 제과기업 파리크라상은 2014년 당기순이익이 538억원으로 전년 대비 18.1% 감소했다. 이는 파리크라상이 실적을 공개한 1998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매년 평균 20%씩 늘었던 매장 수도 2013년 이후 증가세가 꺾였다.

동네 빵집 사정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대신 규제 대상에서 제외된 외국계 베이커리 브랜드와 신생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틈새시장을 파고 들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 시행 이후 국내에 상륙한 외국계 베이커리 브랜드만 20개에 달한다.

이와 관련,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해 말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포장두부가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이후 풀무원, CJ, 대상 등 대기업 포장두부 매출은 줄었지만 그렇다고 중소기업 매출이 증가하지도 않았다. 대기업이 수매를 줄여 콩 생산 농가만 피해를 봤다. 소비자 효용도도 수백억 원 손실을 본 것으로 분석됐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은 대기업, 중소기업, 골목상권, 소비자 모두 이득은 없고 손해만 보는 행정규제다. 중소기업을 살리지도 못하면서 관련 산업만 망치는 이 같은 제도를 유지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시장은 자로 선을 그어 양분할 수 있는 책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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