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과 조선업을 중심으로 하는 구조조정 문제로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는 가운데 보험업계 역시 구조조정에 버금가는 시한폭탄 같은 이슈가 있다. 오는 2020년에 도입되는 IFRS4(국제회계기준) 2단계와 이에 따른 건전성 규제의 변화다. 보험계약은 언젠가 또는 어떤 사건 발생시 고객에게 지급 의무가 생기는 일종의 부채인데 이를 시가로 평가하게 되면서 부채가 크게 늘어나는 것이 핵심이다.
금융감독원은 IFRS4 2단계 도입에 따라 각 보험사의 부채가 얼마나 늘어나는지 추산해 통보하고 지난 3월말까지 부채 증가에 따라 필요한 자본과 이 자본을 확충하기 위한 계획을 보고 받았다. 하지만 이 행동계획엔 금감원이 기대했던 수준, 다시 말해 2020년까지 유상증자나 채권 발행에 대한 구체적인 자본 확충 방안이 없었다.
금감원은 보험사들의 준비가 미흡하다고 보고 다음달부터 각 보험사와 개별 면담을 통해 자본 확충 계획을 요구할 계획이다. 금감원측은 “보험사가 자본 확충을 용이하게 할 수 있도록 신종자본증권과 후순위채 발행 요건도 완화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보험사는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이유는 크게 2가지다. 첫째, IFRS4 2단계는 공시를 위한 회계기준일 뿐 자본 확충의 근거는 아니다. 상장사의 경우 회계상 자본 잠식이 되면 상장 폐지까지 되는 등 타격이 크지만 비상장사의 경우 회계기준이 변해 갑자기 부채가 급증한다고 해서 당장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보험사에 더 중요한 것은 IFRS4 2단계 도입에 따라 금융당국이 준비하고 있는 신지급여력제도라는 건전성 규제다.
신지급여력제도는 보험사가 보험 가입자들에게 돈을 지급할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지표다. 이는 보험 영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일정 기준 미달시 금융당국의 적기시정조치를 받는다. 보험사들로선 신지급여력제도가 결정돼야 자본을 어느 정도 더 쌓아야 보험 영업에 지장을 받지 않을지 가늠할 수 있다. 문제는 금융당국이 아직 신지급여력제도의 기준을 확정하지 않은 채 보험사들에 자본을 얼마나, 어떻게 더 쌓을지 계획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금감원이 자본 확충의 방법론으로 제시하는 채권 발행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신종자본증권은 만기가 없거나 매우 길고 변제순위가 후순위채보다 후순위다. 그만큼 리스크가 커 금리가 높다. 시장에서 소화도 잘 안 된다. 40여개 생명·손해보험사가 2020년까지 5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수십조원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했을 때 투자자를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후순위채는 자본으로 인정받긴 하지만 잔존만기가 5년 이내가 되면 자본 인정 비율이 매년 20%씩 깎인다. 이에 따라 차환 발행 비용이 계속 들어가는 점이 부담이다.
결국 보험사가 자본을 확충하는 가장 현실성 있는 방안은 이익을 유보하는 것이다. 2020년까지 5년간 어떻게 수십조원의 이익을 유보해 자본을 확충할 수 있겠나 싶지만 신지급여력제도 도입에 유예기간을 두면 가능하다.
유럽은 국내의 신지급여력제도와 비슷한 솔벤시2를 올해 도입하면서 보험사가 신청하면 16년간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한국 알리안츠생명을 단돈 300만달러(35억원)에 매각해 화제가 됐던 독일 알리안츠그룹의 경우 상장사라 평판 리스크 때문에 솔벤시2 유예를 신청하지 않았지만 유럽의 중소형 보험사들은 유예를 신청하고 있다.
보험업계의 가장 큰 잠재 리스크로 지목되는 IFRS4 2단계 우려에서 벗어나려면 금융당국이 하루 빨리 신지급여력제도를 확정하고 유예기간을 두겠다고 발표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래야 보험사별로 현실성 있는 부족 자본금이 계산되고 유예기간 동안 이익을 유보해 자본을 확충할 시간을 벌게 된다.
아울러 IFRS4 2단계를 비상장 보험사에까지 일괄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는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IFRS를 주도적으로 도입한 유럽조차 IFRS4 2단계는 상장 보험사에만 적용한다. 미국과 중국, 일본은 아예 IFRS를 도입하지 않고 있고 유럽에서 사업을 하는 보험사만 다른 유럽 보험사와 비교를 위해 IFRS를 기준으로 재무제표를 작성할 뿐이다.
IFRS 적용을 면제하는 것은 ‘주식회사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시행령만 개정하면 된다. IFRS4 2단계 도입으로 멀쩡하던 보험업계가 재무제표상으로 갑자기 수십조원의 부채를 더 지게 된다. 이런 회계기준을 주요 선진국은 적용하지 않고 있는 비상장 보험사에까지 도입해 얻는 이득이 뭔지 궁금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