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은신처에 있던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를 찾아내 경찰에 신고하고 체포되는 과정을 보도한 JTBC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다. 국정농단에 연루된 정유라는 체포되어야 마땅하지만, '기자는 사건을 보도만 할 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어겼다는 거다.
시민의 역할과 기자의 역할은 다르다는 이른바 '언론인의 직업윤리'에 대한 지적이다. 기자가 시민으로서 신고하기로 했다면 보도를 포기했어야 하고, 반대로 보도하려 했다면 신고하지 않고 관찰자로 남았어야 했다는 거다. 쉽게 말해 언론인들이 보도를 위해 일부러 사건을 만들어선 안된다는 의미다.
예컨대 야생의 자연 다큐멘터리 촬영자들은 유유자적 풀을 뜯고 있는 영양을 향해 맹렬히 달려는 치타의 위험을 알려주지 않는다. 딱한 장면이지만 개입하는 순간 세랭게티의 생태계가 무너지는 만큼 관찰자로서 기자의 윤리는 따로 있다는 지적이다.
각 언론사가 전대미문의 사건 기사가 해를 넘겨서도 매일 쏟아내고 있다. 끝없이 넘치는 기사에 눌려 신년 4일이 아닌 12월 35일처럼 느껴지는 요즘 한번쯤 생각해 볼만한 지적임에 틀림없다. 이실직고하면 기자 짬밥 17년 먹으며 이런 보도 윤리는 생소했다. 막연히 핵심 피의자를 신고해 시민의 역할도 하고 기자의 역할까지 '꿩 먹고 알 먹기'라는 생각을 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기사를 써 영향을 미치는 행위 자체가 개입이 아닐까. 이와 유사한 일은 취재현장에서 무수히 벌어진다. 모 업체가 불법 영업을 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기자들은 수사 당국에 사실 확인과 함께 수사 여부를 취재한다. 당국이 수사에 착수하면 이를 기사화한다. 이 자체가 의도치 않은 신고이고 보도다.
최근 칠레의 한 시사고발 프로그램은 함정취재를 통해 칠레 주재 한국 외교관의 미성년자 성추행 사건을 폭로했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과연 언론 윤리에 어긋난 행위라고 비판할 수 있을까. 자연 다큐멘터리 촬영자가 관찰자로 남은 것은 보도 윤리가 아닌 인간이 개입하는 순간 아프리카의 생태계 질서가 깨지는 것을 우려한 탓이다.
작금의 대한민국은 적폐 청산을 통한 실질적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기만적이고 부패한 권력의 민낯을 벗기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하는 절체절명의 시점에 와있다. 삶의 현장은 아프리카의 초원이 아니다. 인간의 개입이 없으면 말 그대로 동물의 왕국이 된다. 시민들은 이 지경에 이른 원인 제공자 중 하나로 언론을 꼽고 있다. 수많은 왜곡과 침묵으로 민주주의를 퇴행시켰다고 질책한다.
기자도 공동체의 일원이다. 기자의 윤리보다 시민으로 우선하는 윤리가 있을 수 있다. 그 상황에 처했다면 어찌했을까. 당연히 신고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보도했을 거다. 기자 윤리가 별 게 아니다. 기사를 쓰는 매 순간 스스로 개입하고 돼 있다는 것을 알고 윤리적으로 행동하는 게 아닐까. 시국은 그만큼 엄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