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업계가 협회장 인선에 난항을 겪고 있다.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이하 벤처특별법) 개정안 등 주요 이슈가 있는 시기라 그 어느 때보다 협회장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그래서 더 협회장의 인선이 쉽지 않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1만4000여개 기업이 회원사로 가입돼 있는 벤처기업협회는 협회장 선임 때마다 골머리를 앓는다. 이번 협회장 선임에는 부회장들이 모두 난색을 표하며 고사하다가 결국 수석부회장이 맡았다.
1만2500여개 회원사 중 절반 가까이 벤처기업에 속하는 이노비즈협회(중소기업기술혁신협회)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노비즈협회의 경우 지금까지 수석부회장이 차기 협회장을 맡는 게 수순이었지만 이번에는 수석부회장이 회장 자리를 고사하면서 관례가 깨졌다. 벤처캐피탈협회도 차기 후임자를 찾지 못해 현 협회장이 사명감으로 연임을 결정했다.
왜 그럴까. 조심스레 협회장의 연봉을 묻는 기자에게 업계 관계자는 “오히려 회비를 더 내야하는 봉사직”이라며 “대표이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중소기업들에게 협회장직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는 부담스러운 자리”라고 답했다.
데이터만 보면 벤처업계는 2015년부터 제2의 부흥기를 맞았다. 국내 벤처기업 수는 2015년 1월 3만개를 돌파한 이래 2016년 11월 현재 3만3000개를 훌쩍 넘었다. 창업투자회사 수는 2016년 11월 현재 120개를 돌파하며 2002년 128개에 바짝 다가섰다. 벤처캐피탈의 신규투자 업체수는 2년 연속 1000개를 넘었다.
2015년 이후 벤처업계 관련 수치들은 벤처투자 열풍의 정점을 찍었던 2002년과 비교되면서 재도약에 서광이 비치고 있는 것처럼 보여준다. 하지만 속살을 들여다보면 전세계적으로 스타트업(창업 초기 기업)들이 제4차 산업혁명을 이끌고 있는 반면 국내 벤처기업들은 혁신적인 기술이 부재하고, 투자업체들은 기술평가 안목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스타트업 투자가 전문인 한 벤처캐피탈 대표는 “앞으로 투자대상은 기존 기술의 융합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벤처기업들이 보유한 기술들을 융합해 혁신을 꾀해야 한다는 얘기다. 다시 말하면 벤처기업들이 한눈 팔지 말고 혁신에 집중해야 할 시기라는 말이다. 올해 벤처업계 협회장 선임이 유난히 어려운 이유다.
물론 금융업계처럼 상근 회장을 모시면 해결될 문제다. 하지만 벤처업계는 상근회장을 모실 정도의 예산이 없는 게 현실이다.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업계 협회장의 연봉이 최소 3억원대인데 반해 벤처기업협회의 협회장은 6000만원, 수석부회장은 3000만원, 부회장은 1500만원, 이사는 800만원의 회비를 내야 한다. 벤처업계 협회 임원사들이 기대할 수 있는 건 명예뿐이다.
벤처업계는 매번 반복되는 협회장 선임 난항과 관련 해결책이 없다는 반응이다. 정말 없을까. 아직 왕성한 활동이 가능하고 유능한 공직 및 재계 출신 은퇴자들이 벤처업계의 발전을 위해 재능기부에 나서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