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대로에 횡단보도가 없는 이유

김경환 기자
2017.04.05 05:00

[우리가 보는 세상]

“한남대로에 횡단 보도가 없는 이유를 아나?”

최근 들은 가장 충격적이고 흥미로운 얘기였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2일(현지 시간) 유럽순방 중 간담회를 갖고 “지금 우리가 얼마나 전제적 국가 사회에 살고 있는지 아느냐”고 물으며 “일례로 단국대 앞 한남동 쪽에는 횡단 보도가 하나도 없다. 청와대(대통령)가 유사시 논스톱으로 갈 수 있도록 말이다. 서울의 여러 도로교통 상황이 청와대 때문에 무너지면 안 된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한남대로는 가장 걷기 불편한 곳 중 한 곳이다. 이태원에서 한남동으로 나와 한남대로를 따라 걷다 옛 단국대 쪽으로 길을 건너가려면 멀찍이 돌아가거나 육교를 이용해야 한다. 한남오거리 쪽으로 걸어와서야 고가 밑으로 길을 건널 수 있는 횡단 보도가 있다. 장애인과 노약자를 비롯한 교통 약자들에겐 매우 불편한 환경이다.

이 모든 이유가 청와대 때문이라니 놀랄 노자다. 지금이 과거 전제군주나 독재 시절과 무엇이 다른 가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다행히 서울시에 문의하니 한남대로에 위치한 고가도로를 철거하면서 횡단 보도를 늘릴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얘길 들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관련된 일련의 과정을 지켜볼 때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도 일견 성숙 단계 초입에 다다른 느낌이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부정부패의 원인이 된 소통 없는 권위주의적 대통령제 모델은 분명히 바뀌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많은 이들이 권위주의 탈피를 위해 첫 번째로 지적하는 것이 바로 업무 장소다. 대통령 집무실인 청와대가 과거 왕이 머물던 구중궁궐에 둘러싸인 곳에 있다 보니 국민과 동떨어진 발상과 비밀주의가 발생한다는 것. 박 시장도 “청와대를 지금 거기에 둬서는 안 된다. 궁궐처럼 국민과 상당히 격리된 공간이어서는 안 된다. 장소는 고민해야겠지만 적어도 집무실을 다우닝가 10번지(영국 총리 집무실)처럼 어딘가로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다행히 유력 후보들도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듯 하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당선되면 광화문 정부청사로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고 매일 출퇴근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이에는 못 미치지만 대통령 집무실을 비서동으로 옮겨 지척에서 소통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하지만 정치권은 말을 바꾸는 경우가 많았다. 일례로 19대 국회에서 개정된 ‘국회선진화법’ 통과 과정이 대표적이다. 2012년 총선 직전에는 야당(민주당)이 다수당이 될 것 같자 여당(새누리당)에서 국회선진화법이 필요하다고 강력주장했고, 야당은 반대 내지 소극적 입장을 견지했다. 정작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하자 이번에는 야당이 국회선진화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여당은 소극적이었다. 결국 논란 끝에 법은 통과됐다. 이번에는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