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중동서도 악명 높은 ‘하청 韓’

류준영 기자
2017.07.13 03:00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한국 기업 도움이요? 사양하겠습니다.” 최근 아랍에미리트(UAE) ‘인터넷시티’를 방문했을 때 이곳에선 만난 현지 정부 관계자가 기자에게 은연중 내뱉은 말이다. 그로부터 우리 IT(정보기술) 업계의 치부를 듣게 됐다. 수년 전 한국 모 기업이 UAE 정부와 SI(시스템통합) 구축 계약을 맺었는데 사업 추진 중 분쟁이 발생했다. 시스템 에러 탓에 UAE 측에서 원청기업에 조치해 달라는 연락을 했는데 해결은 고사하고 원인파악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영문을 알아보니 원청업체가 이 계약 건을 하청에 재하청을 줬고, 실제 시공은 재재하청인 용역업체가 맡았던 것이 들통 났다. 이뿐 아니라 당시 용역업체 직원의 고압적 태도는 현지 직원들이 혀를 찰 정도였다고 한다.

한국의 고질적인 하청 구조 문제는 이곳 사람들에게도 악명이 높다. 이는 한국 IT기업들의 주홍글씨가 돼버렸다. 이 관계자는 “IBM, 오라클, 시스코, SAP 등 실력 쟁쟁한 외국계 기업들이 이미 UAE 경제자유구역에 입주해 있어 구태여 한국기업을 찾을 필요성을 못느낀다”고도 말했다.

중동판 실리콘밸리 ‘실리콘 오아시스’에서 만난 한 외국계 개발자는 유독 소프트웨어(SW) 분야에서 경쟁력이 취약한 한국 IT 산업의 아킬레스건을 꿰뚫고 있었다. ‘한국 개발자들과 함께 공동 연구·개발할 생각이 있냐’고 물었더니 “인도 SW 개발자들보다 더 나은 능력이 있다면 고려해 보겠다”며 차갑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삼성의 히트 스마트폰 갤럭시도 처음엔 인도 개발자들이 많이 도와준 것으로 알고 있다”며 비아냥댔다.

실제로 한국의 SW 개발력은 글로벌 추세에 뒤처져 있다. 지난달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ITTP)가 주요 국가 IT 상장기업 시가총액을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전체 IT기업 시가총액 중 SW업종 비중은 15%로 미국(62%), 중국(58%), 일본(31%)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국내 A급 인력의 최대목표가 구글·아마존·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기업에 취업하는 것이라는데 국내 열악한 근무 환경, 왜곡된 산업 생태계, 낮은 생산성 등이 우수 인재 유입을 가로막고 있다는 분석이다.

어쩌다 한국 IT 생태계가 이 지경까지 왔을까. 착잡하고 답답하기만 하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정부와 업계가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미래 기술 기반의 정책과 비전을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산업계의 곯을 대로 곯은 상처는 방치돼 있다. 여기서 새살이 돋아 나길 바라는 건 언감생심이다. 11일 취임한 유영민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 SW 진흥에 먼저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는 SW 개발자 출신이다. 그런 만큼 국내 SW 산업계가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현실적인 산업 체질 개선 방안이 제시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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