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운용 능력을 인정받으려면 최소 5~6년은 필요합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 임기는 길어야 3년입니다. 제가 맡을 자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산운용업계에서 최고의 가치투자자로 인정받는 A부사장은 "국민연금 CIO로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는 말을 건네자 손사래부터 쳤다.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자신의 생각과는 상관이 없다는 설명이 곁들여졌다. 그는 "솔직히 임기 1~2년도 보장받지 못하는 자리에서 일을 잘할 자신이 없다"고 했다.
국민연금이 602조원의 기금 운용을 책임질 8대 CIO를 뽑고 있다. 지난 7월 강면욱 전 CIO가 일신상의 이유로 사임한데 따른 후속조치다. 지난해 2월 취임한 강 본부장은 결국 2년의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그나마도 그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대우조선해양 채무조정안' 등의 문제로 임기 대부분을 여기저기 불려다녔다. 이 와중에도 국민연금이 벤치마크를 넘는 수익률을 냈지만 중도사임의 고려요소는 아니었다.
강 전 본부장 사임은 정권이 교체되면서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과거에도 정권이 교체되면 CIO는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임했다. 국민연금 CIO 임기는 2년이며 실적에 따라 1년 연임이 가능하다. 그런데 역대 CIO 7명 중 3년 임기를 채운 사례는 단 두 명뿐이다.
국내와 달리 해외 유수 연기금 투자 책임자의 임기는 투자성과에 따라 결정된다. 세계 최대 국부펀드 노르웨이투자청(NBIM)은 윙베 슬륑스타 대표가 2008년부터 10년째 CEO를 맡고 있다.
또 다른 대표 연기금인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는 최고책임자 임기를 정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CPPIB가 설립된 1999년 이후 배출된 CEO(최고책임자)가 네 명에 불과했다. 좋은 실적이 나오는 책임자를 굳이 바꿀 필요가 없다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으로 평가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기금 사이클과 운용 사이클을 생각해보면 최소 3년은 보장하고 3년은 추가로 연장하는 것이 좋을 수 있다"며 "그래야 연금의 안정적인 운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또 몇 년짜리가 될지 모른 국민연금 CIO를 뽑고 있다. 정권이 들어선지 얼마 안됐으니 최대 3년 임기의 CIO를 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장기투자를 통해 좋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가치투자가를 CIO로 절대 갖지 못할 것이다. 운용 실력이 좋은 인사 보다는 정부 입맛에 맞는 인사가 새 CIO 자리를 차지할 것이란 우려도 높다.
국민연금 CIO는 막대한 자금을 굴린다는 이유로 '자본시장 대통령'이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선임이나 퇴임과정을 보면 '자본시장 대통령'이라는 별칭을 이제라도 거둬들여야 할 것 같다. 임기도 보장 못 받는 1년 반짜리 CIO에게 '대통령'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