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증권업계 가상통화 금지령

송정훈 기자
2018.01.23 04:30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에서 금융사가 그것도 대형사가 정부 정책에 동조하지 않고 사업을 하는 게 가능할까요."

최근 만난 금융투자업계 고위관계자에게 증권사의 가상통화 금지령에게 대해 묻자 예상 밖의 답변이 돌아왔다. 금융권에 여전히 규제가 만연해 증권사가 막강한 규제권한을 쥐고 있는 금융당국 정책을 거스를 수 없다고 털어놨다. 가상통화 거래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따지기 전에 일단 정부 정책에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얘기다.

그의 말처럼 증권사들은 이달 11일 정부가 가상통화 거래사이트 폐지 등 고강도 규제 강화 카드를 꺼내든 이후 약속이나 한 듯 가상통화 금지령에 적극 동참하고 나섰다.

한국투자증권은 11일 임직원들의 가상통화 거래 금지를 당부하는 공지를 내부통신망에 올렸다. 이후 전 직원을 대상으로 거래 금지와 관련한 교육을 실시하고 서명도 받았다. 회사 측은 "교육에 참여했다는 의미로 서명을 받은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사실상 임직원에게 거래 전면 금지령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NH투자증권도 12일 임직원들에게 가상통화 투자를 금지하는 내용의 통신문을 보냈다. 삼성, KB증권 등도 관련 방안을 검토하는 등 가상화폐 거래 제한 조치가 증권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미래에셋대우는 일찌감치 지난달 11일 전체 임직원의 가상통화 투자권유 금지와 투자 자제를 권유하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하는 등 거래 제한 조치를 선제적으로 취했다.

하지만 증권사들은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임직원 거래 금지에 소극적인 모습이었다. 가상통화 관련 고객 설명회를 개최하고 서비스 등을 검토하기도 했다. 정부의 가상화폐 정책이 거래사이트 폐쇄보다 불법거래에 대한 규제 강화 쪽으로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이 정부 가상화폐 규제정책에 적극 호응하고 나서면서 과도하게 금융당국 눈치를 보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규제 일변도의 금융산업 현실 속에서 당국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가상통화 규제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일부 대형 증권사들이 최대 경영현안인 초대형IB(투자은행) 발행어음 업무 등의 신규 인허가를 감안해 정부 정책에 적극 보조를 맞추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신규 인허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기 위해 정부에 코드를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발행어음 업무 인가는 자본 4조원 이상 증권사 중 한국투자증권만 획득했고 미래에셋대우, NH, 삼성, KB증권 등은 당국의 허가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과도한 규제와 정부 개입'은 여전히 금융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꼽힌다. 금융사의 자율성이 떨어지는 게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증권사들의 가상통화 금지령은 금융산업이 대표적인 규제산업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듯해 뒷맛이 개운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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