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Hermes)는 1837년 창업한 프랑스의 명품 제조회사다. 제품 중에는 그레이스 켈리 모나코 왕비의 이름을 딴 ‘켈리’ 핸드백이 가장 유명하다. 1000만원이 넘는다. 지난 5월 말레이시아 경찰이 전 총리 부인이 가지고 있던 에르메스 핸드백 284개를 압수한 적이 있다. 대략 견적이 나온다.
에르메스는 1993년 기업을 공개했는데 당시 청약경쟁률이 34대1이었다. 이 패밀리도 다른 유복한 집안과 마찬가지로 가족 간에 돈 문제로 갈등이 심했다. 기업공개로 일부 가족 구성원이 공정한 가격에 지분을 처분할 수 있어 분쟁이 순화되었다고 한다. 기업공개가 특이한 기능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2010년 10월 에르메스 CEO 패트릭 토머스는 알프스에서 사이클링을 하던 중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건 전화였다. 2시간 후 지분 17%를 취득했다고 발표하겠다는 내용이다. 그후 2014년까지 무려 4년간 이어진 법정공방과 프랑스 정부의 조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사실 LVMH가 에르메스에 눈독을 들인 것은 구찌를 적대적으로 인수하려다 실패한 직후인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계열사를 통해 우선 지분 4.9%를 조용히 사들였다. 프랑스에도 우리처럼 5% 규칙이 있다. LVMH는 당시만 해도 공시의무가 없던 복잡한 주식 스와프 파생상품을 활용해 2010년까지 지분을 조금씩 늘렸다.
LVMH가 지분 17% 취득 사실을 공표하자 프랑스 시장감독기관인 AMF는 바로 거래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고 에르메스는 회사 지분의 50.2%를 보유한 지주회사를 설립해 경영권 방어에 나섰다. 프랑스 정부는 그와 관련된 모든 조치에 법률적 문제가 없다고 선언했다.
2012년 7월 에르메스가 LVMH를 내부자거래, 주가조작 등 불공정거래 혐의로 형사고소하면서 분쟁이 심화되었다. LVMH도 명예훼손과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에르메스를 맞고소했다.
2013년 LVMH는 지분을 23.1%로 높였다. 그러나 결국 2014년 10월 LVMH는 법원 명령에 따라 75억달러 가치의 주식을 모두 처분하고 에르메스 경영권 분쟁은 막을 내렸다. LVMH의 에르메스 인수 시도는 애당초 무리수였다. 사이가 그다지 좋지는 않았지만 가족들이 지분 70%를 보유한 회사였다.
에르메스 CEO는 이 싸움이 회사와 사람을 원자재로만 보고 화려함과 권력만 추구하는 진영과 세련됨의 문화를 창조하는데 몰두하는 진영의 문화전쟁이었다고 다소 과장되게 표현했다.
그 말대로 세상에는 두 부류의 기업과 사람이 있다. 규모와 화려함과 영향력을 추구하는 기업과 다른 것은 포기하고 품질과 브랜드 가치에만 집중하는 기업이다. 전자가 큰 경제적 부가가치와 고용을 창출해서 세상사에 큰 영향을 끼치고 역사를 끌고 간다. 그러나 정작 세상과 나라의 최고 수준을 규정짓는 것은 후자일지도 모른다. 한국이 단 한 사람의 첫 노벨과학상을 염원하는 이유도 같다. 사람도 같다. 학계에는 교수가 아무리 많은 논문을 썼어도 그 교수의 학문적 수준은 마지막 한 편이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에르메스가 자신들이 표방하는 것과 같은 가치를 내세워 경영권을 방어하고 독립을 유지했다면 고무적인 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