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포르노 사이트를 차단한다는 정부 발표가 가히 나쁘게 들리지는 않는데, 일부 시민은 예민하게 반응할 정도로 “야동 볼 권리를 허하라”며 최근 촛불 집회까지 열었다. 포르노 기준이 아직 불명확한 한국에서 반발자들은 정부가 합법 사이트까지 죄다 가로막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일부 대중이 취향조차 ‘검열’로 인식하는 것은 빠른 인터넷 기술 속도와 이에 허둥지둥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정부의 급한 정책이 엇박자로 엮이기 때문이다.
‘리벤지 포르노’를 막겠다는 정부의 취지를 넘어 대중은 ‘포르노’ 자체를 막겠다는 의미로 확대해석할 여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드러나면 창피할 내가 접속한 사이트를 정부가 ‘감시’할 수 있다는 기분 나쁜 검열에 대한 우려로 규제를 반대하는 청와대 청원자 수도 20만 명을 넘었다.
포르노 단속에 대한 정부의 규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포르노그래피의 발명’이라는 책에선 포르노에 대한 과도한 규제가 더 문제일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미국은 1969년 국가 차원의 위원회를 만들어 포르노그래피를 금지하는 것이 정당한가를 실질적으로 조사한 적이 있다. 보고서의 결론은 이랬다. 성에 대한 흥미는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건강에도 이롭고 따라서 포르노그래피의 판매, 진열, 배부, 금지에 관한 법률 모두를 폐기할 것으로 권했다.
위원회가 수천 편의 영화와 잡지를 ‘검열’하면서 얻은 재미있는 결론은 그 누구도 자기가 성적으로 타락하거나 성범죄자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었던 사람은 없었다는 사실이다.
덴마크에선 포르노그래피가 그다지 유해하지도 않을뿐더러 성범죄가 되레 줄었다는 것이 실제 증명되기도 했다. 완전 개방한 이후에는 성범죄가 3분의 1로 줄었다.
문제는 포르노의 유해성이 아니라, 이를 해석하는 방식이나 태도다. 최근 여성가족부가 내놓은 ‘성 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에 “외모가 비슷한 출연자가 과도하게 출연하지 않도록 하라”는 지침은 평등 뒤에 숨은 검열이나 규제의 함의가 읽힌다는 점에서 논란이다.
상업 민주주의에서 어떤 유행을 좇거나 돈이 되는 상품이 쏟아지는 건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다. 상업적 규제나 검열은 최소한의 테두리에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자본주의의 기본 예의다.
그렇지 않다면 폭력과 음란이 뒤범벅된 구약성서를 금서로 지정해야 한다는 2007년 홍콩의 주장도 당장 수용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