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국내에서 두 회사가 경영권 승계 문제로 특별히 주목받는다. 대한항공이 있는 한진그룹에서는 조양호 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비상 경영권 승계가 이루어지고 KT에서는 이례적으로 이른 시점에 차기 회장 인선 절차가 진행된다. 두 사례 다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은 이사회에 최고경영자 승계에 관한 정책을 마련해 운영할 것을 권고한다. 특히 비상시 최고경영자 승계와 관련한 내용을 반드시 포함하도록 한다. 최고경영자가 회사 운영이나 실적, 주가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 경우가 많은데 갑작스러운 사고나 질병, 사임 등으로 회사 리더십에 공백이 생기는 경우 회사가 비상대책을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모범규준은 ①최고경영자 승계 담당조직의 구성·운영·권한·책임 ②당해 조직운영의 효율성에 대한 자체평가 ③고위경영진에 대한 성과평가 ④비상 시 혹은 퇴임 시 최고경영자 승계절차 ⑤임원 및 후보자 교육제도 등의 내용을 담은 구체적·종합적인 최고경영자 승계방안을 이사회가 마련해서 공개할 것을 권고한다.
그러나 올해 기업지배구조보고서를 공시한 160개 상장회사 중 53개사가 최고경영자 승계정책을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승계정책이 있다고 공시한 회사들도 대부분 일반적인 내용으로 투자자들의 투자판단에 도움이 될 정도는 아니다. 마지못해 한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우선 대다수 회사에서 경영권 승계문제는 일종의 터부다. 거론하기 즐거운 주제도 아니고 이사회가 거론하기 시작하면 이사회의 최고경영자에 대한 불신으로 오해될 소지도 있다. 카리스마가 강하고 성공적인 최고경영자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승계계획이라는 개념 자체에 회의적이다.
승계계획이 구체적일수록 회사 내에서 성급한 정치적 활동과 권력투쟁, 파벌조성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가족경영기업에서는 불필요하게 가족간 불화를 조장할 수도 있다. 가족경영기업들의 경우 이 문제는 정작 필요한 시점이 오기 전까지 거론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사실 오너 회장들이 승계에 관해 의중을 잘 드러내지 않거나 공식화하지 않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최악의 경우 계열분리가 유일한 해법인 상황도 각오해야 한다.
공식적인 승계계획과 별도로 가족경영 기업집단의 경우 경영권 승계는 어려운 문제다. 지분이 부족하기 때문에 무리수를 두기도 한다. 그러나 요즘은 일반 주주들뿐 아니라 사실상 사회적인 승인까지 필요하기 때문에 무리한 진행으로 물의를 빚으면 오히려 정통성이 훼손되고 리더십도 약해진다. 또 지나치게 이른 승계 결정은 ‘후계자’로 하여금 사내외에서 과도하게 검증을 받게 하거나 아니면 부실한 경영수업으로 연결된다.
현행 승계정책제도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소유지배구조, 문화적 특성과 잘 맞지 않아 운용이 쉽지 않을 것이다. 소유가 분산된 기업에서는 이사회가 ‘차기’를 결정하면 대개 그대로 진행되지만 오너가 있는 기업에서는 이사회의 결정이 형식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또 공익과 경제정책 상의 이유로 정부가 이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지는 기업도 계속 있을 것이다.
차기 회장, 은행장 선출을 놓고 빈번하게 잡음이 나온 바 있는 금융그룹을 필두로 오너 없는 기업들이 제도가 안착하는 데 기여하고 점차 모든 기업에 ‘베스트 프랙티스’로 확산하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