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 이낙연의 염치(廉恥)

세종=박준식 기자
2019.10.30 04:00

[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

이낙연 국무총리가 가진 암기력은 비범하다. 초면의 스무 명 넘는 인원들과 자리해도 식사를 마칠 때쯤이면 참석자 이름을 그 자리에서 한 명 한 명 외워 부른다.

이 총리가 전남지사에 이어 내각 수반이 되어서도 관료사회 장악력이 높은 건 적어도 팔 할이 특출난 그 두뇌 덕분이다. 외워지지 않으면 수첩에 모두 기록한다.

고시 출신이 즐비한 공직 사회에서 그는 업무 장악력에 있어선 1급은 물론 장·차관을 압도한다. 수십 장짜리 보고서를 보고 그 자리에서 맹점을 간파한 게 여러 차례다.

이 총리와 같이 한 자리에서 "비상한 머리로 서울 법대에 합격하고서 왜 고시에 도전하지 않았는가" 물었다. 돌려 말하지 않고 그는 "염치가 없었다"고 고백했다.

한 친구가 군 전역을 한 그에게 월급을 나눠주며 고시 공부를 지원해줬다고 한다. 하지만 일곱 달 만에 포기하고 말았다. 고향의 동생들과 친구 보기 부끄러워서다.

전남 영광에서 칠남매 맏이로 태어난 그는 분유를 살뜨물 수준으로 물에 묽게 타 먹고 커 온 형편이었다. 형제들을 대신해 상경 진학했으니 느긋하게 준비할 여유는 없었다.

다른 일화도 있다. 투자신탁사에서 일하다 마음을 고쳐 신문사 기자 생활을 하던 그를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가 눈여겨 보고 공천 약속으로 입당을 권했다.

한데 그는 존경하던 총재의 손짓을 거절하고 도쿄 특파원으로 떠났다. 그에 대해서도 이 총리는 "그냥 염치가 없었다"고 기억했다. 출세만 그리진 않았던 셈이다.

이 총리는 가족들에게도 "염치를 알라"고 강조한다. 아들이 대학 2학년 때 군 면제 판정을 받자 병무청에 "공익근무라도 하게 해달라"고 탄원서를 냈다.

의사가 된 아들이 월급을 모아 몰래 외제차를 샀다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다시 판 일화도 있다. 이 총리가 전남지사 시절인데 "염치도 없다"고 꾸짖었다 한다.

염치(廉恥)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체면을 차리면서도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 청렴하고 검소한 생각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마음을 다스리는 절제력이다.

염치가 사라진 시대다. 차기 대권 지지율 1위인 이 총리에게 시대 정신이 부족하다고 한다. 지키지도 못할 거창한 시대 정신보다는 '예의염치'가 더 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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