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을 살아보니~~’ 18일 오전 한 유튜브 채널을 통해 특별한 행사가 진행됐다. 유튜브를 통해 실시간 중계된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에서 철학자이자 수필가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문단의 역사 속 인물이 아닌 현역 문인으로 호명된 것이다.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는 2001년부터 시작됐지만 생존 문인이 조명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실제로 올해 조지훈 시인과 한하운 시인, 이범선 소설가, 조연현 문학평론가 등이 김 교수와 함께 문학제의 주인공이었지만 김 교수만이 추억이 아닌 현재의 인물로서 더욱 부각됐다. 행사의 시작도 선배 문인들에 대한 묵념이었지만 김 교수만은 조금 달랐다.
동갑내기이자 막역한 친구 사이로 1960 ~ 70년대 함께 따뜻한 글들로 젊은이들의 지성을 일깨웠던 김태길 전 서울대 교수와 안병욱 전 숭실대 교수가 몇해전 고인이 된 것과 비교해도 그렇다. 기념의 대상이기에 앞서 대화의 상대로 평론가들의 해석에 ‘그건 그런 뜻이 아니고’라고 빙그레 웃음지을 법한 인물인 것이다.
김형석 교수와 여러 문인들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올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는 대산문화재단과 한국작가회의가 개최해 올해로 벌써 스무 해를 맞이하는 연례행사다.
대산문화재단은 ‘국민교육진흥’과 ‘민족자본형성’을 기반으로 교보생명과 교보문고를 일군 신용호 창립자의 아호를 땄다. 문화재단의 행사로 탄생 100주년 문학인 문학제가 열린 것은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이 2대 이사장으로 취임(1993년)한 8년 뒤의 일이다.
20년을 맞는 문학제와 더불어 빼놓을수 없는 것은 30년째 계절마다 바뀌어 걸리는 ‘광화문글판’이다. 교보생명 빌딩 외벽에 걸린 가로 20m, 세로 8m의 ‘광화문글판’에는 공자, 헤르만 헤세, 파블로 네루다, 도종환, 김용택, 정현종, 나태주, 서정주 등의 시와 금언 등 글귀가 새겨진다.
30자 이내의 짧은 문구지만 수많은 이들이 여기에 감동했다. 1998년 IMF 체제라는 엄혹한 시절에는 ‘나무 하나하나 죽이지 않고/숲이 되다’(고은)라는 글이 눈길을 끌었고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정현종 ‘방문객’) 같은 시는 지금도 회자된다. 탄생 100년째에 윤동주 시인은 2017년 봄에 ‘내를 건너 숲으로/고개를 넘어 마을로/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이라는 글판으로 새로움이 더해졌다.
대산(大山)이라는 명칭처럼 문학제에서 조명되고 광화문글판에도 실리곤 하는 문인들은 모두 산 속의 숲이요 나무기도 하다. 납북, 월북으로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조명암, 이용악, 김사량, 함세덕, 오장환 작가 등이 학자들의 집중 조명 대상이 됐다. 시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지만 남과 북에서 모두 경계인 취급을 받았던 백석은 2012년 학술대회와 문학그림전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까지 열릴 정도였다.
김소월, 윤동주 등 애송시인은 말할 것도 없고 친일과 독재옹호 시비 등으로 공과가 나뉜다는 평가를 받는 서정주, 김동리 등도 문학적 성취를 중심으로 조명돼 홀대받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 최고의 사실주의 작가로 평가받았지만 1944년 38세의 나이로 요절했던 강경애가 남북 학자들의 첫 공동 논문집인 ‘강경애, 시대와 문학’을 통해 2006년 문학사로 한발 더 성큼 들어온 것도 빛나는 업적이다.
문학관의 차이, 문학사를 바라보는 입장의 차이, 친일이나 월북 같은 정치적 차이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통해 근대 문인들이 선택 또는 배제되었던 데에서 벗어난 것이다.
김형석 교수는 30년전 통일 독일을 지켜보면서 한반도 내부 문제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통일을 이루기는 힘들 것 같다고 점쳤었다. 100세 지성의 그 우려는 여전히 유효한 걸까. 지난 16일 북한은 평화의 한 상징이었던 개성의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도발을 감행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영원한 젊음과 자유의 시인인 김수영이 1968년 교통사고로 47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 날이기도 했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빙산의 하나’(산문 '해동')라고 일갈했었던 38선(휴전선)은 김수영 시인이 탄생 100주년을 맞은 내년에도 지금처럼 얼어붙어 있을까. 그가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시 '폭포')고 노래한 폭포수같은 도저한 흐름으로 남북과 사회 도처의 갈등이 씻겨내려갈 수 있을까. 30년간 광화문글판은 굴곡없이 평평하고 문학의 큰 산(大山)은 한없이 호젓한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