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형이 아니다 [우보세]

세종=박준식 기자
2020.11.04 05:00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고위공직자 가운데 세 명이 자신의 부동산 문제로 곤욕을 치렀다. 첫번째는 청와대 전 대변인. 이른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로 재개발 예정지 건물을 사들였다가 발각돼 여론의 십자포화를 받고 결국 낙마했다.

두 번째는 전 청와대 민정수석. 대통령에게 있어 현 비서실장보다 더 측근이라던 그도 다주택 공직자 사정 광풍에선 자유롭지 못했다. 모범을 보였어야 할 이가 강남 요지 두 채를 가지고 파네, 안 파네 설왕설래한 건 괘씸죄를 받기에 충분했다.

마지막은 홍남기 경제부총리다. 세종시에 아직 지어지지 않은 아파트 분양권 매각이 불가능해 20년 살던 의왕집을 팔았는데, 현재 전세인 마포 아파트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사석에서 이야기를 스스로 했는데 이를 한 언론사가 특필했다.

첫째와 둘째 사례는 공직자가 시대적 사명에 맞지 않게 행동한 것이므로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헌데 셋째 사례는 갸우뚱하다. 사적 영역을 사명에 맞게 우직하게 정비하다가 벌어진 일인데도 비난을 받고 있다. 경제 총 책임자라는 이유다.

사실 비난을 참칭한 조롱이다. 언론은 '전세난민' 혹은 '바보형'이라고 칭했다. 임대차 3법을 총괄해놓고 본인이 그 수렁에 빠졌다며 자승자박이라고 놀린 것이다. 가족들 사진까지 구해다 붙인 기사도 나왔다.

하지만 새 임대차법은 부총리가 아니라 여당이 밀어붙인 거라는 걸 세 살 먹은 아이도 안다. 선출 권력이 정치와 경제를 장악한 시대라 그 근원은 국민이 스스로 택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걸 인지한 이들의 비판은 '영혼 없는 관료'로 바뀐다.

조롱은 주로 약자가 권위의식에 맞설 때 쓰는 도구였는데, 지금은 사람을 특정해 비하하면서 무차별적으로 돌팔매질을 하는 정치적 수단이 되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가 부동산으로 문제가 된 다른 이들과 달리 도덕적 비난가능성이 큰 지는 모르겠다. 일방적으로 두둔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리사욕을 버리고 내린 사적인 결정에 대해서까지 조롱하는 건 분풀이 이외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마포 전세집에 이어 매각 계약을 체결한 의왕집을 추가로 취재해 현 임차인이 집을 비우지 않고 있다는 새로운 기사도 쏟아졌다. 이 사실이 조롱에 조롱을 더하기 위한 목적 외에 어떤 또 다른 공익적 의미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부총리가 결국 의왕집 임차인에게 위로금을 건네고 문제를 해결했다는 기사도 나왔다. 그러자 이번에는 언론사 간부급들이 기명 칼럼으로 부총리가 뒷돈을 건네 문제를 해결했다고 비난한다. 이젠 이사비를 뒷돈이라 왜곡하는 것이다.

부총리가 마구잡이로 돈을 풀자는 정치권에 맞서 재정준칙을 만들자 여론은 너무 느슨하다고, 여당은 너무 옥죈다고 서로 협공하고 있다. 대주주 주식 양도세 시행은 이미 계획된 걸 진행하는 건데도 떨어진 주가 책임까지 덧씌워 비난한다.

여당 전·현직 당대표는 부총리를 부하로 본다. 전직은 추경 예산 규모 협의 과정에서 부총리가 증액 신중론을 펴자 '해임건의안'을 운운하며 당장 목을 자를 듯 위협했다. 현직은 부총리를 본인이 총리 때 천거했다고 공연히 말한다.

각종 경제현안에 대한 여당의 찍어내리기에 부총리도 신물이 난 것 같다. 소득 있는 곳에 과세 있다는 공평과세를 여당 반대로 통과시키지 못한 부총리는 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책임지고 오늘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말했다.

부총리 사의는 청와대에서 이날 곧바로 반려됐지만 그의 스트레스를 읽을 수 있다. "관(官)은 치(治)하는 곳"이라고 대놓고 말하던 시대가 지났다. 민주화된 시민정치 사회에서 정부는 샌드위치 신세다. 임명권력의 도덕은 홍남기가 한계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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