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말이 됩니까. 도대체 왜 우리만 쏙 뺐는지 이해할 수가 없네요. 면세점은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곳이라 가장 위험한 곳이고, 코로나19(COVID-19)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는데…."
지난달 말 한 면세점 고위임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서울시내 백화점·대형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 종사자를 대상으로 백신 우선접종 희망자를 접수하면서 면세점 종사자를 제외한 데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면세점은 유통산업발전법상 대규모점포에 해당하지 않아 벌어진 일이다. 그러나 면세점 종사자 간에도 희비가 엇갈렸다. 백화점 안에 위치한 면세점 종사자들은 그나마 백화점을 통해 우선접종 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외부에 따로 위치한 면세점 종사자들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런 모호하고 불분명한 기준이 면세점 종사자의 분노를 부채질했다.
면세점업계의 강한 불만이 단지 이번 백신 우선접종 제외 사태만으로 촉발된 것은 아니다. 코로나19로 빈사 상태에 빠진 면세점에 미지근한 지원만 하는 정부에 대해 그동안 쌓인 섭섭함이 그 밑바탕에 깔렸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면세점은 '황금알을 낳는 산업'으로 불렸다. 중국 다이궁(대리구매상)이 시내 면세점을 순례하며 1명당 수천만 원어치 면세상품을 싹쓸이했다. 2019년 국내 면세점 매출은 전년 대비 30% 성장한 24조8586억원에 달했다. 당당히 세계 1위였다.
그러나 눈부신 성장의 이면에서 경고음도 울렸다. 정부가 면세특허를 남발하고 시장의 70~80%를 다이궁에게 의존하는 기형적 시장구조가 형성돼서다. 다이궁을 유치하기 위해 여행사에 지급하는 송객수수료를 경쟁적으로 올리며 출혈경쟁이 펼쳐졌다. 밖으로 매출은 급증했지만 속으로 영업이익이 쪼그라들었다. 대기업인 두산과 한화가 2019년 면세시장에서 두 손 들고 철수한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는 결정타였다. 하루아침에 해외여행길이 막혀 손님이 사라졌다. '면세 빅3'마저 자존심을 버리고 생존모드에 들어갔다. 롯데와 신라면세점은 비싼 임대료 탓에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에서 짐을 쌌다. 신세계는 국내 백화점 1위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 있던 면세점을 접었다. 그나마 글로벌 백신접종이 본격화하면서 면세점들은 하반기에 기대를 걸며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변이바이러스 등으로 그 기대감도 무너졌다.
#"한국 애널리스트들이 중국 하이난 면세시장의 강력한 성장을 코로나19로 해외 이동이 불가능해지면서 나타난 일회성 현상이라고 보는 것은 너무 낙관적인 전망이다."
세계적 유통 전문지 무디리포트의 마틴 무디 회장이 지난 6월 한국 정부와 면세시장에 보낸 경고 메시지다. 한마디로 중국의 면세굴기라는 위기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대응하지 못할 경우 세계 1위 한국 면세시장은 경쟁력을 잃고 추락할 것이라는 말이다.
중국은 코로나19 발발 이후 면세굴기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지난해 하이난 내국인 면세특구의 면세쇼핑 한도를 10만위안(약 1819만원)으로 올리는 등 다양한 지원책을 쏟아낸다. 그 덕택에 중국면세품그룹(CDFG)은 지난해 스위스 듀프리그룹을 제치고 전세계 매출 1위 면세점으로 올라섰다.
그러나 무디 회장의 지적처럼 한국, 특히 한국 정부의 위기의식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소비가 미덕인 시대에 내국인 면세한도는 여전히 600달러(약 71만원)에 묶여 있다. 제3자 국외반송, 재고면세품 판매, 공항면세점 임대료 매출연동제 등 정부의 면세점 지원정책들은 선제적이기보다 두세 박자 늦다. 마지못해 내놓는 듯한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반도체만 고용을 창출하고 외화를 벌어들이는 것은 아니다. 혹여 아직도 면세점사업은 대기업의 특혜사업이라는 잘못된 인식에 사로잡혀 위기를 수수방관하고 있지는 않은지. 세계 1위 한국 면세시장이 살아나기 위해선 무엇보다 코로나19 종식이 필요하리라. 그러나 그보다 우선과제는 정부의 마인드에서 면세점에 대한 '거리두기'부터 없애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