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정체성은 '저널리즘'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신뢰받는 정보와 오피니언을 사회에 전달해 영향력을 발휘하고 그 발전에 기여한다. 언론의 사실보도로 정치가 변곡점을 맞은 사례는 역사 속에 무수히 많다. 문제는 언론사도 운영에 돈이 든다는 것이다. 돈이 모자라면 언론 본래의 기능도 잘 발휘될 수 없다.
일반 주식회사처럼 투자자들을 유치하면 어떨까. 자본이 확충되고 금융을 얻기도 쉬워진다. 그래서 많은 언론사가 주식회사다. 나아가 상장회사가 되면 규모의 경제도 가능해진다. 돈 걱정이 줄어들면 취재력이 강해지고 기사의 범위와 수준이 높아진다. 본연의 저널리즘을 구현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1967년 상장회사가 됐다. 그러나 타임스는 1896년 이래 가족기업이다. 사위에게 승계됐다가 1963년 그 아들에게, 1992년 다시 그 아들에게 넘어갔다. 2018년 5세 승계가 이뤄졌다.
타임스가 상장회사임에도 가족경영이 유지되는 것은 복수의결권 덕분이다. 타임스는 A형, B형 주식의 차등의결권제도를 택해 외부 최대주주는 A형 주식을 17% 넘게 보유했음에도 지배구조에 영향력이 없다. 사실상 채권자다. B형 주식을 보유한 오너일가가 거의 90% 의결권을 가지고 이사 14명 중 9명을 선임한다.
세습경영은 부정적인 말로 쓰이지만 언론은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상황에서 폭풍에 휘말리기 쉬운데 가족기업을 보전한다는 특유의 책임감을 가진 발행인이 그 상황을 극복하기 쉽다는 논리가 있다. 특히 정치권력과 맞설 때는 사운을 걸어야 하는 것이 언론사다. 사회적 자산이 많은 가족경영자 겸 발행인이 더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타임스의 일반주주들이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는 데 있다. 주가가 신통치 않아서다. 일반기업이었다면 경영진이 자리 걱정에 주주들을 위해 뭐라도 했을 터인데 타임스의 오너는 꼭 그럴 이유도 없다. 저널리즘이 우선이다. 언론사가 자산운용사들에 휘둘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2005년 엘마스리라는 헤지펀드매니저가 등장했다. 인권운동가로도 유명한 엘마스리는 타임스의 경영에 문제가 있어 기업가치가 저평가됐다고 사주를 공격했다. 투자실책과 과도한 경영진 보수 외에도 차등의결권 때문에 오너가 일반주주들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엘마스리는 주주총회에서 위임장 대결도 벌였다. 타임스는 차등의결권 덕분에 신문사가 외압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응수했다.
엘마스리의 요구는 관철되지 않았지만 타임스가 부실자산을 처분하고 자사주 취득프로그램과 배당확대를 발표하는 등으로 행동주의가 일부 성과를 거뒀다. 오너패밀리는 스톡옵션도 포기했다.
타임스가 펀드의 공격에도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정통 저널리즘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타임스의 오너일가는 돈이나 권력에 집착하지 않고 정석대로 언론 본래의 자세에 충실했다. 이 경우 자본의 논리만으로 언론사를 공격하는 것은 여론은 물론이고 자본시장의 호응도 얻을 수 없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모델은 저널리즘과 재무적 성과를 동시에 성취하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 41세 오너가 경영하는 타임스가 그를 이룰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