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모닝 인사이트] 데이비드 M. 램프턴 존스 홉킨스 고등국제연구대학원 명예교수, 왕지시 베이징대학교 국제전략연구소 설립 소장, 포린 어페어스 기고문 '미국과 중국, 파멸 직전에 서다'

미국과 중국이 악화된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데이비드 M. 램프턴 존스 홉킨스 고등국제연구대학원 명예교수, 왕지시 베이징대학교 국제전략연구소 설립 소장은 최근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 기고한 '미국과 중국, 파멸 직전에 서다(America and China at the Edge of Ruin)'에서 "군사적 위험은 높아지고 경제적 완충 기능은 약화되며 상호 신뢰 기반은 빠르게 붕괴되고 있다"면서 "지금 방향을 틀지 못하면 양국은 전략적 충돌을 피할 수 없는 국면에 진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저자들은 위기를 맞이한 미중 관계의 본질이 단순한 '경쟁'이 아니라 '구조화된 적대'에 있다고 짚었다. 미국은 중국을 패권 도전자로 규정하고 중국은 미국을 자국의 부상을 가로막는 패권 세력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호 적대적인 인식은 군사 계획, 동맹 전략, 수출 통제와 산업 정책 등에 깊이 반영돼 쉽게 해소되기 어려운 구조가 형성됐다는 설명이다.
군사 안보 영역은 가장 위험한 지점이다. 핵과 재래식 전력의 현대화 등 군비 경쟁이 가속화하고 서태평양에서 해상과 공중 충돌이 반복되면서 오판이나 우발적 사고가 언제든지 무력 충돌로 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 영역에선 상호의존성을 취약성으로 인식하면서 갈등 국면이 확산되고 있다. 산업 디커플링, 그리고 공급망 구축을 위한 관세와 수출 통제가 제도화됐고 희토류와 고성능 반도체를 둘러싼 갈등은 세계 시장의 분절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저자들은 "경제를 안보의 인질로 삼는 접근은 결국 양국 모두의 성장 기반을 잠식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저자들은 역사적 경험을 기초로 할 때 현재의 미중 갈등은 얼마든지 극복이 가능하다는 긍정적 측면을 제시했다. 과거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에서 미국과 중국 양국은 서로를 상대로 참전했고 전장에서 수만에서 수십만 명의 병사들이 희생됐다. 그럼에도 1970년대 초 닉슨 대통령과 마오쩌둥 수석은 양국 관계를 개선하기 손을 잡았으며 이는 최고 지도자의 선택이 구조적 적대관계를 해소시킨 좋은 사례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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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들은 오늘날 미중 관계 역시 회복의 가능성을 충분히 갖고 있다고 봤다. 특히 지난해 부산 APEC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의 회담은 양자의 관계 개선 의지를 충분히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당시 시 주석은 미∙중이 "파트너이자 친구"가 돼야 한다면서 장기적인 상호이익에 집중하고 무역과 경제협력을 통해 양국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을 "매우 강력한 국가의 위대한 지도자"라고 칭송하며 미∙중 간 대립보다 외교와 무역 기반 협력 관계로의 전환을 시사했다. 저자들은 "그동안 양국은 상대방 지도자에 대한 존중이 없었고 중국을 G2로 간주하자는 제안도 일축했다"면서 "국력과 위상이 높아진 중국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존중을 표한 것은 관계 재정립을 위한 토대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회담 이후엔 실질적인 협력과 관계 개선 조치도 뒤따랐다. 중국은 미국산 대두 구매 재개, 희토류 수출 통제 중단, 불법 펜타닐 거래를 근절하기로 합의했고, 미국도 엔비디아의 고급 반도체칩을 중국에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조치를 발표한 것이다. 저자들은 비록 근본적인 관계 재설정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수출과 기술 분야에서 관계 회복 필요성을 양측 모두 공감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 회담이었다고 강조했다.
특히 저자들은 양국 관계를 안정시키는 가장 좋은 출발점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뜨거운 이슈인 대만 문제라고 지목했다. 중국은 대만 독립 시도에 대해 단호한 입장이지만 군사적 장악을 공식화한 적은 없다. 대만해협 포위와 실사격 훈련은 대만 독립을 막기 위한 것이며 평화적 통일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미국이 양안 관계의 평화적 통일을 지지하고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공식적 입장을 밝히는 것만으로도 관계 안정화의 초석이 될 수 있다고 봤다. 특히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으로 양국 관계가 급랭한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독립 반대 입장을 표명한다면 긴장 완화와 관계 개선을 위한 강력한 메시지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외에도 외교, 경제 및 사회적 측면에서 △고위급 군사회담 재개 △평균 관세율 인하 △휴스턴과 청두 영사관 재개방 △언론인 통제 완화 △학술 및 연구 교류 재개 등이 양국 관계 회복을 위한 현실적인 해결 과제라고 제언했다.
저자들은 양국 정상들 간의 관계는 누그러졌지만 아직 제도화 단계에 이른 것을 아니라면서 양국 관계가 얼마든지 심각한 위험과 파멸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양국은 강력하고 안정적인 중산층을 재건해야 한다는 공통된 목표를 가진 만큼 관계 정상화는 필수적 과제다"라면서 "서로에 대한 목표와 접근 방식을 조정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으며 과거 닉슨과 마오쩌둥의 역사적 교훈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