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정의 역주는 경이로웠다. 지난 16일 베이징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500m. 트랙 13바퀴 반을 도는 종목이다. 준결승에서 최민정은 6위로 처져 있었다. 3바퀴를 남긴 순간 최민정은 아웃코스 추월을 시작했다. 5위, 4위, 3위... 두 바퀴를 남기자 어느새 1위로 달리고 있었다. 보면서도 믿기 힘든 역전이었다.
그는 준결승에서 올림픽 신기록을 새로 쓰며 1위로 결승에 올랐다. 결승에선 아예 초반부터 1위로 치고나가 금메달을 땄다. 2018년 평창에 이어 이 종목 2연패다. "나 최민정이야." 1500m는 누구도 넘볼 수 없다고 소리치는 듯했다.
다른 선수들을 멀찌감치 따돌린 압도적 경기력은 그동안 흘린 땀의 결정체였다. 한눈팔지 않았고 부정한 방법을 쓰지 않았다. 최민정은 계주 종목 메달 시상식을 한 시간 앞두고도 다음 종목 1500m를 위해 홀로 훈련했다.
올림픽은 이처럼 스포츠정신을 지키는 선수들의 스토리로 감동을 준다. 20일 막을 내린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은 좀 달랐다. 스포츠정신이 흔들렸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도 선명하게 보여줬다. 러시아 피겨 스케이터 카밀라 발리예바다.
'피겨 천재' 16세 발리예바는 지난해 12월 국가대회에서 금지약물을 복용한 게 뒤늦게 드러났다. 도핑 검사 결과 협심증 치료제 '트리메타지딘'을 포함한 복수의 약물에 양성 반응을 보였다.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 결정에 따라 그는 가까스로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세계의 반응은 싸늘했다.
도핑을 금지한 룰을 어기고도 제재 없이 올림픽에 나섰기 때문이다. 한국, 미국 등 중계 해설진은 발리예바가 연기를 펼치는 동안 침묵으로 항의했다. 오직 러시아만 환호했다. 러시아는 러시아대로 불만일지 모른다. 서방 중심의 세계 스포츠 질서에서 불이익을 본다고. 발리예바가 피해자라는 동정론도 있다. 코치나 어른들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도핑 사실을 숨길 수는 없다.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도 변하지 않는다. '피겨 퀸' 김연아는 지난 14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도핑을 한 선수는 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 이 원칙에 예외가 있어선 안 된다"고 밝혔다. 여간해선 피겨 관련 사안은 언급하지 않는 김연아도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또다른 피겨 선수 출신 곽민정 해설위원은 "누가 꾸몄고 누가 잘못했든 간에 책임은 출전 선수가 지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이들의 말처럼 공통의 룰을 지키지 않거나, 모두가 동의하지 못하는 방법을 쓴다면 누구도 설 자리가 없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올림픽 초반 주최국 중국을 겨냥, 판정 시비가 거세게 일었던 것도 그래서다. 판정 오류나 실수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결과 연거푸 특정 국가나 선수가 수혜를 입는다면 납득하기 어려워진다.
이 원칙은 스포츠가 아닌 분야에도 통한다. 대통령선거가 한창인 정치도, 코로나19 영향에 희비가 엇갈리는 방역과 경제현장도 그렇다. 선거든 경제든 '도핑'이나 '편파 판정' 없이, 공정한 규칙 아래 정정당당한 경쟁이 되길 기대한다. 팬데믹 그 어려운 여건에서도 정직하게 땀흘린 모든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