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금융업의 본질은 신뢰다

이종우 경제평론가
2022.10.26 02:05
이종우 경제 평론가

동서증권이란 회사가 있었다. 외환위기 전에 업계 4위 정도 하던 곳인데 이 회사가 사라진 과정이 흥미롭다. 외환위기가 한창일 때 대주주인 극동건설이 동서증권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는 기사가 났다. 사람들이 '대주주가 포기할 정도로 동서증권이 좋지 않은 모양이구나'라고 판단해 자금을 빼내가기 시작했는데 이를 버티지 못하고 회사문을 닫고 말았다. 신문에 기사가 나온 그날 하루 동안 벌어진 일이다. 금융시장에서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회사채 시장이 요동을 치고 있다. 강원도가 레고랜드를 만들기 위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 강원중도개발공사가 법원에 화의신청을 했기 때문이다. 강원도가 지급보증한 2050억원의 회수가 불분명해지면서 채권시장이 얼어붙었다.

채권시장은 거래당사자가 많지 않은 곳이다. 금융권과 연기금 등 몇몇 기관이 채권인수를 전담하기 때문에 채권 하나만 부도가 나도 그 여파가 금융시장 전체로 번지게 된다. 유사한 채권의 거래가 중단되고 신용도가 높은 국채나 국가가 지급을 보증한 채권으로 거래가 한정돼 일반기업은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진다.

레고랜드사태는 오랜 시간 안전하다고 인식돼온 지방자치단체에서 문제가 벌어졌다는 점과 국내외 경제가 침체돼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상태에서 일이 터졌다는 점 때문에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다. 당장 국내 최대 재건축단지인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 차환 발행되지 않아 건설사가 사업비 7000억원을 떠안는 일이 벌어졌고 최고신용등급을 받은 여러 공기업의 채권이 일부 인수되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가 채권안정펀드가 가지고 있는 1조6000억원을 시장에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최대 20조원의 추가 캐피탈콜(펀드자금요청)도 마련하고 있다. 강원도도 예산편성을 통해 내년 1월 말까지 채무보증을 이행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진화에 나섰지만 채권시장이 안정되려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레고랜드 부도로 당분간 강원도는 자체 예산을 제외한 개발사업을 진행하기 힘들어졌다. 한번 계약을 불이행한 곳에 돈을 빌려줄 금융기관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돈줄이 풀리더라도 추가비용을 치러야 한다. 금융기관이 강원도에 자금을 지원할 때 더 많은 신용을 요구할 텐데 그게 모두 돈이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번 일은 정치가 경제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남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필요하면 직전 책임자가 한 계약도 이행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기 때문에 이제 금융기관은 돈을 빌려주기 전에 정치권 동향까지 고려해야 하게 됐다.

금융위기는 조그만 불신에서 시작된다. 처음에는 하찮은 일이 힘이 커져 마지막에는 나라 전체가 나서도 막지 못하는 사태로 번지게 된다.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도 그런 형태였다. 중앙은행조차 얼마 되지 않는 돈으로 치부하던 서브프라임모기지가 경제 전체를 흔드는 역할을 했다. 강원도가 내린 결정이 금융시장 불안으로 확산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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